[명사가 보는 총선]<3>영화감독 곽경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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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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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때만 관심받는 내고향 산동네

부산에서 시대배경이 1980년대인 작품을 준비할 때 일이다. 198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를 찾아야 했던 영화사 직원이 내게 물었다.

“감독님,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을 추천해 주세요.”

“해운대와 남천동, 그리고 동래 쪽은 가봐야 다 변했을 테니 중구나 동구 쪽으로 찾아 봐.”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부산 중구 남포동에 살았던 나는 내 고향 중구를 바로 떠올린 것이다.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뒤 ‘헌팅’을 떠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서글픔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나의 작은 동네는 긴 세월 동안 개발의 혜택에서 늘 비켜갔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옛 모습을 간직한 고향 덕분에 영화 촬영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29일 동아일보 종편 채널A의 선거기획 보도를 위해 다시 남포동을 찾았다. 모습은 예전과 같았지만 분위기는 좀 달랐다. 여야 후보들이 곳곳을 누비며 유세를 펼치는 탓에 동네는 들썩들썩했다.

새누리당 정의화, 민주통합당 이해성 후보는 공교롭게도 내가 졸업한 부산고 대선배들이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애매한 상황. 국회의원 자리를 두고 겨루는 두 후보가 모두 내 선배라 자랑스러웠지만 마음속 한 편에는 걱정도 들었다. 두 후보가 내놓은 산복도로 공약 때문이다.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산복도로에 편의시설을 갖추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았지만 결국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에도 정 후보는 산복도로에 순환 셔틀버스를 배치하겠다고 했고 이 후보는 에스컬레이터를 놓겠다고 공약했다.

좁은 비탈길인 산복도로 주변에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산비탈에 터를 잡은 탓에 오래된 주택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두 후보의 공약집을 손에 쥐고 산복도로를 걸어봤다. 허리가 굽은 노부부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힘겹게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년간 힘들게 오르내렸을 텐데 정치인의 눈에는 선거 때만 이들이 보이는 걸까.

중앙정부에 말이 먹히는 영향력 있는 5선 의원을 만들어 부산 중구를 제대로 발전시키자는 정 후보. 여태 믿었지만 달라진 게 없으니 이번엔 바꿔보자는 이 후보. 두 선배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동네사람들을 위해 혼신을 다해 달려갈 것이다. 당선된 뒤에도 지금처럼 지역주민들만 보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길 바랄 뿐이다.

곽경택 영화감독
#4·11총선#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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