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발표에 없는 “대북제재 해제-경수로 제공 우선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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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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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美 ‘UEP 중단’ 전격 합의… 6자회담 재개 청신호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등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24만 t의 영양 지
원을 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양측이 29일 발표함에 따라 한반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
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방한한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미 대화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모습. 동아일보DB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등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24만 t의 영양 지 원을 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양측이 29일 발표함에 따라 한반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 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방한한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미 대화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모습. 동아일보DB
북한과 미국이 29일 비핵화 사전조치와 대북 영양 지원에 전격 합의함에 따라 앞으로 6자회담 재개에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북-미가 1년 가까이 합의에 난항을 겪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가동 중지에 합의를 이뤄내면서 북핵 협상은 급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에도 3개월 만에 제네바 합의를 이뤄냈다.

○ 예상보다 나아간 진전

지난달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3차 북-미 대화가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 당국자들의 기대 수준은 높지 않았다. 회담 전날까지도 정부 고위 당국자는 “서로 간을 보는 수준의 탐색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미국이 제공하기로 했던 영양 지원의 품목 변경과 지원 규모 확대를 요구했다. 내부 권력다툼 속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협상 기조가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북-미 대화 기류의 변화는 베이징 일정이 끝난 직후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북-미 대화 때만 해도 “공은 북한에 넘어간 상태”라고 했던 미국은 이번 3차 대화 직후엔 “공이 (북-미) 양쪽 코트에 모두 있다”는 미묘한 발언을 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뭔가 변화구를 던졌느냐’는 질문에 “변화구인지, 직구인지 분명치 않다”며 북한이 모종의 움직임을 보였음을 시사했다.

결국 북한은 4월 태양절(김일성 생일)과 ‘강성대국 진입’ 선언을 앞두고 미국과의 합의를 선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의 합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는 북한이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 속에서 외부의 식량지원은 물론이고 내세울 만한 외교적 성과가 필요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약속대로 UEP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검증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이르면 상반기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이 발표한 합의 내용은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이라고 단서를 달고 ‘6자회담이 재개되면 대북 제재 해제와 경수로 제공문제를 우선 논의할 것’이라며 미국 측 발표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앞으로 추가 협상 및 이행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당장 북한은 UEP 임시 중단의 방안으로 ‘UEP 공회전’을 포함한 몇 가지 제안을 협상 카드로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UEP 공회전 방식은 우라늄가스를 넣지 않은 상태에서 설비의 가동은 계속하는 것으로 우라늄농축을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는 데다 가동을 중단했다가 재가동했을 때 설비의 로스(손실) 비율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요구를 일시적으로 들어주되, 협상에 대한 지렛대(레버리지)는 계속 쥐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 한국은 이번에도 소외?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추가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일단 “환영한다”고 밝혔지만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시도가 노골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북한이 김정일 사망 이후 대남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미 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제3차 북-미 대화 직후 한목소리로 추가적인 남북 비핵화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25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미 관계의 진전을 위해선 남북 개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그간 한국이 요구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북한이 모두 받아들였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한국은 보이지 않는 중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6자회담 틀 안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대화의 순서(sequence)보다 내용(substance)이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위해 우리가 길을 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7일 미국을 방문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구체적인 후속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 한국의 외교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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