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무죄’ 후폭풍?… 진술의존 檢뇌물수사 줄줄이 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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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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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권력형 비리 기소후 잇단 무죄 판결에 골머리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실세 비리 의혹이 폭주하고 있지만 검찰이 칼을 대는 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가 최근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절뚝거리고 있다. 310억 원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한예진) 이사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는 ‘말’은 많은데 수사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돈봉투 살포의혹 사건 역시 전모를 파악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경향은 뇌물수수와 불법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심에서 2건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더 뚜렷해지고 있어 ‘한명숙 무죄 판결의 후폭풍’이란 분석도 나온다.

○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 곳곳에 암초


김 이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측근 정용욱 씨(해외 체류)의 금품수수 의혹과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 측이 총선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서 로비를 받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관련자 진술이 나와 파문이 커졌다. 한예진 재무담당 직원이었던 최모 씨(38·여)가 “김 이사장의 지시로 2억 원을 인출했다. 이 돈이 이 의원 측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에서 진술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사는 별 진전이 없다. 로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김 이사장이 “돈을 건넨 적이 없다”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데다 최 씨가 로비 용도로 돈을 찾아 김 이사장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것은 로비정황은 되지만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달 초 광주지법에서는 검찰에서 보해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2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가 법정에서 말을 바꾼 전 경남은행장 문모 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 검찰은 “돈 받은 사실을 검찰에서 자백까지 했는데 법정에서 부인했다고 무죄를 선고한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금품수수 사건 수사의 난항을 반영하듯 뇌물죄로 기소된 사람의 무죄율은 2005년 7.1%, 2007년 12.8%, 2009년 11.8%, 2010년 6.3% 등으로 전체 형사사건의 무죄율(1, 2%대)보다 높은 수준이다. 법조계에서는 뇌물 피고인들이 유명 변호사를 대거 투입해 파상공세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뇌물죄의 입증 여부를 어떤 사건보다 엄격하게 판단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몸통 밝힐 합법적 무기가 필요하다”는 검찰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의 금품수수 사건은 은밀한 현금거래 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전모를 밝히려면 자금 공여자가 범행내용을 털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실 수사’ 도마에 올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한 전 총리의 금품수수 의혹 사건도 결국 불법자금 공여자로 지목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5만 달러 사건)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9억 사건)가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뒤집는 바람에 의심스러운 단서가 많았음에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때문에 핵심 인물이 수사에 협조하면 실체가 드러나고 버티면 덮이는 현재 검찰 수사상황 아래서는 국민이 권력형 비리사건의 배후나 몸통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속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사건도 검·경이 총력 수사에 나섰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핵심 관련자들이 함구해 배후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특검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핵심 인물이 자발적으로 진실을 털어놓도록 유인하는 ‘합법적 무기’가 있다면 권력형 비리의 ‘몸통’을 더 원활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범죄를 진술하면 처벌을 감면해 주는 ‘내부증언자 불기소 처분 및 형벌 감면제’ 등과 관련해 이미 국회에 제출된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 처리해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시행될 경우 검찰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크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플리바기닝(가벼운 구형 등 검찰 측이 양보하는 대신에 피고 측이 유죄를 인정하는 것) 등 외국에서도 유사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도입 필요성은 충분하다”면서도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해 우선 신뢰 확보를 위한 검찰의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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