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상회담 제안 비밀접촉 공개]“투명 추진 말뿐” 지적에 청와대 “일일이 공개할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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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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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러운 청와대

북한이 남북 간 비밀 접촉 내용을 전격 공개한 1일 청와대는 당황하며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북한의 보도에 담긴 ‘저자세의 흔적’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누차 밝혀온 대북정책의 원칙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집권 4년차를 맞아 국정 지지율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는 시점에 ‘이벤트 효과’를 노리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투명하고 △원칙 있고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을 약속해 왔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하지 않는다” “임기 내에 정상회담을 한 번도 안 해도 좋다” “최소한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등을 강조해왔다. 앞서 대선 후보 시절에도 “핵폐기와 북한 개방에 기여하는 회담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의제와 목표를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하며 절차도 투명해야 한다”며 남북 정상회담의 원칙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이 발생한 이후엔 “우리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도발이 발생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북한과 웃으며 대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로서는 이번 비밀접촉을 통해 ‘북한의 사과’를 단호히 요구했다는 점을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우리 정부가 단호한 사과 요구를 했더라도 “올 6월과 8월에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게 사실이라면 ‘선 사과-후 정상회담’이란 기존의 정책을 소리 없이 뒤엎는 게 된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북한이 정상회담 협상과정에서 ‘유감 표시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크다. 덜컥 회담을 했지만 북한이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낭패다. 따라서 선 사과를 받기 전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거다”라며 사전정지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 왔었다.

이 대통령 자신이 ‘국민적 합의’가 정상회담에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도 청와대로선 부담스럽다.

이 대통령은 2007년 4월 헌정회를 방문해 “국민의 합의가 없는, 투명하지 않은 어떤 회담도 신뢰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로선 지금이 남북 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할 시점인지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결국 이번 접촉의 전후과정을 보면 그동안 정부가 밝혀온 원칙이 무색해지고 임기 내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흔들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를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원칙 없는 회담 추진이란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또 남북관계의 특성상 일일이 공개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돌출행동으로 비공개 원칙이 지켜져야 할 사안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외적으로 원칙을 지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북한과 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는 게 확인된 거다”라고 항변했다. 베를린 제의 이후에 △북측에 구체적 내용을 전달할 것이며 △전달한 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접촉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비밀 협상’이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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