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시대… 에너지 비상대책 시행 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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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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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밝힌 유흥가… 과태료 고작 8건

지난달 27일 오전 2시 반경, 서울 강북의 한 유흥가. 옥외조명을 소등해야 하는 오전 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지만 유흥주점의 네온사인은 여전히 현란한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500m 남짓한 이곳 거리에 밀집한 유흥주점은 10여 곳. 하지만 조명을 끈 주점은 한 곳도 없었다. 유흥주점의 한 호객꾼은 “소등 조치가 내려진 초기에는 단속이 많았지만 요새는 뜸한 편”이라며 “어차피 단속에 걸려도 과태료를 무는 사례가 거의 없어 평소대로 조명을 켠 채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8시 반, 11개 정부 부처가 입주해 있는 정부과천청사. ‘자동차 5부제’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서 있지만 이날 운행이 금지된 번호판 끝자리가 3, 8번인 차량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60여 대가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한 주차장에서만 운행금지 차량 4대가 주차돼 있지만 정부가 부과하기로 한 30만 원의 과태료를 받은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정부가 유흥업소 야간소등 조치와 공공기관 자동차 5부제 등 에너지 위기 비상대책을 내놓은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한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 비상대책은 유류세 인하에 반대하고 있는 정부가 내놓은 사실상 유일한 고(高)유가 대책이다. 하지만 허술한 관리로 민간은 물론이고 정부와 지자체마저 ‘나 몰라라’ 하면서 에너지 절약 효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 야간조명 과태료 두 달간 달랑 8건


정부는 2월 27일 두바이유가 5일째 100달러를 넘어서자 에너지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념탑 분수대 교량 경관조명 소등 △유흥업소 주유소 대형마트 아파트 실외골프장 등 야간조명 소등 △공공기관 차량 5부제 △냉난방설비 효율 점검 및 조명간판 발광다이오드(LED) 교체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다. 특히 야간소등에 대해서는 각각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하고 3월 초부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난달 27일 현재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가 야간조명 소등 조치 위반에 부과한 과태료는 8건, 40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 부문의 야간조명 소등 대상 업체가 9만2000곳인 것을 감안하면 제재를 받은 곳은 단속 대상 업체 1만 곳당 한 곳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과태료를 부과한 지자체는 경북과 울산(각 3건), 서울과 경기(각 1건) 등 네 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12개 지자체는 단 한 건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정부는 야간소등 조치가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의 위탁을 받아 단속에 나서고 있는 지자체의 설명은 다르다. 어려운 지역경제 상황에서 야간 소등조치를 어겼다고 수백만 원씩 과태료를 물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자체들이 두 달간 적발한 야간소등 조치는 1500여 건에 이르렀지만 이 가운데 과태료 부과로 이어진 사례는 0.5%에 불과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제도 어렵고 불 안 끈 것이 큰 범죄행위도 아닌데 과태료를 부과하기 어렵지 않으냐”며 “왜 우리만 단속하느냐는 항의도 많아 사실상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서 계도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야간전력 사용 작년보다 오히려 늘어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 역시 에너지 절약 대책을 지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들은 자동차 5부제를 어긴 직원에게는 3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과태료 부과 실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정부과천청사 관리소 관계자는 “매일 순찰을 돌며 하루에 10건 정도 5부제 위반 차량을 적발해 각 부처에 위반자를 통보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각 부처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신 당직 추가근무 조치를 내리는 수준의 제재에 그치고 있다.

기념탑과 분수대, 교량 경관조명을 소등하기로 했던 지자체들 역시 관광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지난달부터 일부 분수대나 교량의 경관조명을 다시 켜거나 야간조명 소등 조치를 요일제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민간은 물론이고 정부마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에너지 위기 대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 3월 하루 평균 야간 전력거래량은 4억2499만 kWh로 지난해 같은 기간(3억9291만 kWh)에 비해 8.2% 늘었다. 같은 기간에 주간 전력거래량이 6.1% 늘어난 것에 비하면 훨씬 큰 증가폭이다. 정부가 고유가로 야간조명 제한 조치를 내놨던 2003년이나 2008년에도 전력사용량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별 효과도 없이 고유가 때마다 반복되는 야간조명 소등 같은 주먹구구식 대책보다는 전력사용량이 많은 주택 및 건물 난방이나 기업들의 전력 낭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너지 낭비 지표인 에너지원단위는 2009년 0.355로 일본(0.101)보다 3배나 높았다.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석유 0.355t을 쓸 때 일본은 0.101t을 쓰는 데 그쳤다는 의미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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