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분산案’ 후폭풍]“과학벨트 분산땐 융합연구 시너지 못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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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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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쪼개기’에 우려

과학비즈벨트委 첫 회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첫 회의가 위원장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운데) 주재로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렸다. 이날 첫 회의에선 과학벨트를 ‘비수도권’에 배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과학비즈벨트委 첫 회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첫 회의가 위원장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운데) 주재로 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렸다. 이날 첫 회의에선 과학벨트를 ‘비수도권’에 배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의 핵심 연구 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을 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세 곳으로 분산 배치하는 ‘삼각벨트’ 방안이 부각되자 과학계에서는 “과학벨트 쪼개기가 한국 기초과학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 “쪼개면 융합연구 시너지 없다”


과학계는 기초과학연구원이 여러 곳으로 흩어지면 연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견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보 소통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는 ‘대면효과’라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기초과학연구원을 분산 배치하면 연구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길에다 시간과 돈을 갖다 버리는 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승효과인 ‘융합 연구’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최근 과학계에서는 학문 간 융합 연구가 대세”라며 “융합 연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 발견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 그룹이 세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이 여러 곳으로 분산 배치되면 융합 연구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연구 시설이 한 지역에 뭉쳐 있을 때 시너지를 낸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일 최대의 ‘과학도시’로 불리는 아들러스호프는 연구원과 대학, 기업 등이 한데 모여 연구 시너지를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들러스호프는 5개 연구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89개 기업과 17개 연구소, 6700여 명의 학생과 1만4000여 명의 연구자가 모인 대규모 산학연 단지로 성장했다.

○ 우수 연구 인력 확보도 신경 써야


과학벨트 논의의 핵심이 변질되는 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포스텍의 한 교수는 “과학벨트 조성 사업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연구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목적인데 중이온가속기나 기초과학연구원처럼 거대한 연구 시설이 들어서야 기초연구를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거대 과학 시설도 중요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삼각벨트’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정책과 겹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과부는 KAIST, GIST, DGIST를 3대 연구 거점 기관으로 선정해 그동안 ‘리서치 트라이앵글’의 발전 방안을 수립해왔다. 교과부는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들 3개 학교에 울산과학기술대(UNIST)까지 포함해 4개 과학기술대학의 연구 분야를 특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하는 발전 방안을 올해 6월까지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령 KAIST는 첨단 융복합 기술을, GIST는 광(光) 기술을, DGIST는 의료, 신약, 지능형 자동차 분야를, UNIST는 첨단 생체소재, 원자력 기술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식이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교과부가 UNIST까지 포함해 이미 4개 과학기술 중심대학의 발전 방안을 수립해왔는데 여기에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을 세운다면 중복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기초과학연구원의 분산 배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KAIST, GIST, DGIST에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을 설립하는 일은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유수 대학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 3개 대학 “일단 환영”

‘삼각벨트’ 당사자인 3개 대학은 “공식적인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서도 첨단 기초 연구 시설이 학교에 들어선다는 점에서는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KAIST의 한 보직교수는 “기초과학연구원이 추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 연구 시설이 학교에 설립되면 연구의 질이 향상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KAIST가 세계 10위권 대학에 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만큼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GIST 관계자는 “기초과학연구원이 꼭 한 지역에 모여 있을 필요는 없다”면서 “대학마다 특성화된 연구 분야를 내세우는 만큼 기초과학연구원과 연관시키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GIST 관계자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시에서 (과학벨트) 이슈를 끌고 나가고 있어 지금은 학교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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