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23일 ‘신정아 파문’이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미칠 영향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정운찬 일병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초과이익공유제 논란과 신정아 파문에도 불구하고 정 전 총리를 계속 끌어안고 가고 싶어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핵심 관계자들에게 전달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 전 총리의 도덕성 논란이 확산되거나 다른 악재가 돌출할 경우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신 씨의 말은 그대로 믿고 전직 총리의 말은 무시할 수 있느냐”며 “책 내용은 신 씨의 굴절되고 왜곡된 기억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 씨가 22일 공개한 자전 에세이 ‘4001’에서 정 전 총리를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라고 비판한 데 대해 정 전 총리를 적극 엄호하고 나선 것이다.
정 전 총리를 4·27 경기 성남시 분당을 보궐선거에 출마시키려 했던 친이(친이명박)계 핵심그룹에서도 22일 오후부터 “신 씨 파문이 정 전 총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며 각계 여론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에서 ‘정운찬 구하기’에 나선 것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란 현 정부의 후반기 국정기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그를 향후 다목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람을 밀어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를 당장 4·27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 내보내지 않더라도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그의 동반성장위원장직 복귀는 마냥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대통령도 공감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더는 문제를 키우지 말라’며 주의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 전 총리가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내건 ‘장벽들’을 걷어내 복귀의 명분을 주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신정아 파문’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주말 이후 정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장직에 복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동반성장위가 28일 전체회의를 열고 처음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정식 논의키로 한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진위와 관계없이 신 씨의 책 내용이 기정사실화되고 여론 악화로 이어질 경우 그를 계속 끌어안는 것이 여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불통 정부’란 꼬리표가 달린 상황에서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 측이 이날 “현재 정 전 총리의 복귀 여부는 반반”이라고 밝힌 점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 전 총리는 이날 김윤옥 여사를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명예위원장에 추대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는 철저히 함구했다. 신 씨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됐어요. 행사에 왔는데 뭘…”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 전 총리는 행사 도중 임태희 대통령실장,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과 만났으나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정 전 총리가 청와대를 방문하는 동안 이 대통령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를 주재해 두 사람 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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