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 ‘상하이 스캔들’]덩씨, 김정기에게서 직접 기밀빼낸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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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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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金-鄧씨 함께 찍은 사진파일 분석 확인
金-鄧씨 촬영 143분후 ‘200명 연락처’ 찍어… 찍은 사진기 기종도 ‘소니DSC-TX1’로 같아

본보가 입수한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와 덩신밍 씨가 상하이 힐튼호텔에서 나란히 찍은 사진(왼쪽)과 덩 씨가 보관하고 있던 한국 여권 인사들의 비상연락망. 두 사진은 약 143분 간격을 두고 같은 카메라로 찍었다. ☞ 상하이영사 내연女
‘상하이 마타하리’ 덩신밍(鄧新明·33·여) 씨가 이명박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 200여 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김정기 전 상하이(上海) 총영사로부터 직접 빼냈을 정황을 보여주는 중요 단서가 9일 드러났다.

본보가 입수한 사진 파일정보를 분석한 결과 덩 씨는 지난해 6월 1일 오후 6시 55∼56분 상하이 힐튼호텔 컨벤션홀에서 김 전 총영사와 기념사진 2장을 찍었다. 이어 2시간 20여 분 뒤인 오후 9시 19∼21분에는 같은 소니 DSC-TX1 기종의 디지털카메라에 MB 선대위 비상연락망 등 정부 여권 실세 연락처가 줄줄이 찍혔다.

김 전 총영사는 그동안 “해당 자료는 내가 관저에 보관하고 있던 것이 맞지만 유출 경로는 나도 모르는 일”이라며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이 같은 일을 꾸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특히 국내 정보라인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덩 씨가 소유한 카메라로 보이는 똑같은 기종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이 찍힌 것으로 드러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관저에서 몰래 유출했을 것이라는 김 전 총영사의 주장이 무색하게 된 셈이다. 나아가 덩 씨가 직접 빼냈거나 또는 김 전 총영사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 자료를 빼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전 총영사는 앞서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MB 선대위 비상연락망 사진들에 대해 “사진 배경을 자세히 보면 대리석 또는 카펫으로 보이는데 내 생각엔 관저 바닥 또는 탁자에 내려놓고 급하게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당시 일부 사진에 연락망들이 서로 겹쳐진 채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내가 작정하고 덩 씨에게 자료를 내줄 생각이었다면 깔끔하게 찍어서 주지 왜 이렇게 급하게 찍은 티를 내고 찍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정보를 분석한 결과 총 8장의 사진은 19분부터 21분까지 3분에 걸쳐 상당히 여유 있게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 金씨 작년 9월 찍었다던 鄧과의 또다른 사진, 12월에 촬영 ▼
‘스캔들 영사’ 2명 한국 보낸 후 한달뒤 찍어… 비상식적 만남

김정기 전 총영사가 덩신밍 씨와 지난해 12월 22일 새벽 2시 36분 상하이 밀레니엄 호텔 13층 클럽 라운지에서 찍은 사진. 김 전 총영사는 이 사진을 사진 파일 정보와는 달리 지난해 9월 초순경 프랑스 총영사와 면담 중에 찍었다고 주장했다.
김정기 전 총영사가 덩신밍 씨와 지난해 12월 22일 새벽 2시 36분 상하이 밀레니엄 호텔 13층 클럽 라운지에서 찍은 사진. 김 전 총영사는 이 사진을 사진 파일 정보와는 달리 지난해 9월 초순경 프랑스 총영사와 면담 중에 찍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자료를 평소 2층 관저 책상 세 번째 서랍 속 명함지갑 안에 보관해왔다는 해명에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도 평소 안 쓰던 자료를 다른 사람이 찾아내 찍었다는 부분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김 전 총영사가 지난해 9월 찍었다고 주장한 덩 씨와의 사진도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2시 36분경 상하이 밀레니엄호텔에서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덩 씨와의 스캔들에 휘말린 법무부 H 전 영사와 지식경제부 K 전 상무관을 조기귀국 시킨 지 한 달여 만에 문제의 덩 씨와 사진을 찍은 셈. 김 전 총영사는 직접 쓴 소명자료에 “지난해 9월 프랑스 총영사와 면담 중 덩 씨가 와서 인사를 하기에 함께 찍었던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진이 찍힌 시간대인 오전 2시가 넘은 시점에 유부녀와 함께 호텔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해명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총영사가 직접 기밀 자료를 유출했거나 덩 씨의 유출을 방조했을 가능성이 드러남에 따라 상하이 스캔들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영사관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김 전 총영사가 덩 씨의 정보 수집을 도와줬다면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방대한 한국의 기밀자료가 새나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김 전 총영사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총영사관의 정보라인을 자신에 대한 ‘음해 세력’으로 꼽아 왔던 터라 파문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사건을 두고 “4월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 나가려는 나의 계획을 무산시키려는 일부 정치 세력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직접 쓴 공개 소명 자료에 총영사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정보라인의 장모 부총영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장 부총영사가 나와의 악연에 대해 보복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외에도 김 전 총영사는 해당 사건이 불거진 이후 총영사관 책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계속해 왔다. 언론과의 인터뷰와 소명자료를 통해 ‘탈북자 송환’ ‘상하이 당서기와 한국 고위인사 면담’ 등 민감한 사안에 덩 씨가 도움을 준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덩 씨를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공개 자료에 이를 “총영사관 ×× 영사에게서 들었다”고 실명을 적시하기도 했다.

외교관으로서 나아가 총영사관의 최고책임자로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계속해 온 셈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김 전 총영사가 뭔가를 감추기 위해 사건 공개 이후 계속 무리수를 던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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