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 군사회담 제의, 南 수용]美-中 “남북대화 필요” 8시간만에 北 기다린듯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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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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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제안 절묘한 타이밍

2000년 첫 남북 국방장관 회담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2000년 9월 25, 26일 제주에서 열렸다. 조성태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서귀포시 중문단지의 회담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첫 남북 국방장관 회담 첫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2000년 9월 25, 26일 제주에서 열렸다. 조성태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서귀포시 중문단지의 회담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북한은 20일 오전 3시 27분(한국 시간) 미중 공동성명이 나온 지 8시간 만인 오전 11시 47분 남측에 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 왔다.

북한은 미중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 조치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대화 제의를 했다. 마치 중국과 사전 협의를 한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특히 북한은 1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의 입으로 “우리는 남측 당국으로부터 아직 어떤 정식 제안을 받은 것이 없거니와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던 것을 6일 만에 180도 뒤집어 당국자들을 놀라게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국군의 사격훈련에 보복 운운하며 위협하다 맞대응하지 않은 뒤 올해 신년공동사설부터 갑작스레 적극적인 대화공세를 펴왔다.

북한은 신년사설을 통해 “민족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북남 사이의 대화와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운을 뗀 뒤 노동당과 내각 등 각종 기관을 동원해 집요하게 대화공세를 폈다. “책임 있는 당국의 이름으로 제의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에 그대로 응했고, “성명이 아니라 정식 통지문을 보내라”는 요구도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잇단 대화 제의를 진정성 없는 위장 평화공세로 규정하고 신중하게 대응해 왔다. 2009년 남북 정상회담 논의가 어긋나자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고 잠깐의 대화무드가 조성됐다가 돌연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미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절묘한 타이밍과 형식으로 내놓은 대화 제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당국자는 “이를 거부할 경우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남측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는 위기를 극단까지 고조시킨 뒤 대화공세로 흐름을 극적으로 전환하는 전형적인 북한의 전술이다. 북한은 1994년 6월 미국의 폭격이 예상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전격 수용해 ‘미국이 대북 제재 추진을 중단하면 북한은 핵개발을 동결한다’는 합의를 도출한 뒤 전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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