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입법로비 루트 된 후원금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5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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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일부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대가성 입법 로비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업이나 이익단체들이 음성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접근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최 근에는 불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후원금제도가 로비의 루트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가장 흔한 것이 10만 원 단위의 소액으로 여러 명이 후원금을 내는 방법입니다. 10만 원 후원금은 기부자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준 쪽이나 받은 쪽이나 로비 의도를 감출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로비 목적이 아니었다'거나 '누가 후원금을 냈는지 몰랐다'고 잡아 때면 됩니다.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청원경찰법 입법 로비 의혹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청목회, 즉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는 청원경찰과 그 가족 등 1000여명의 명의로 국회의원 33명에게 모두 2억7000만 원의 후원금을 제공했습니다. 그 시기는 청원경찰의 처우 개선을 위한 청원경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작년 12월 직전인 10월에 집중됐습니다. 그러나보니 국회의원들이 대가를 받고 입법을 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 대상은 주로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 소속 의원들이지만, 법 개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상임위 의원들도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관련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합니다. '누가 후원금을 냈는지도 몰랐다'거나 '법 개정은 로비와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청목회가 이들 국회의원들과 접촉하거나 로비를 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목회 외에 농협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농협법을 개정하기 위해 3600명의 직원을 동원해 농림수산식품위 소속 의원 18명에게 이런 식의 로비를 시도하려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현 행 정치자금법은 정치와 돈의 관계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정치판을 맑게 하려는 취지로 지난 2004년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정치가 돈 때문에 추해지고 왜곡되는 것을 막으려면 기본적으로 돈 안 드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언제쯤 그런 세상이 올까요. 동아논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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