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혼 “대북 맞춤형 제재” 강조 했지만… 北에 퇴로 열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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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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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조정관(오른쪽)이 2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물을 마시고 있다. 전영한 기자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조정관(오른쪽)이 2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물을 마시고 있다. 전영한 기자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조정관이 2일 밝힌 대북 금융제재는 사치품 거래와 위폐 유통, 마약 밀수 등 북한의 불법행위를 총망라한 뒤 이를 겨냥해 만든 미국 행정부 차원의 첫 ‘대북 맞춤형 금융제재’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2일 “아인혼 조정관이 밝힌 대북 제재는 새로운 제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여러 국제법 등에 있던 대북 제재 관련 규정을 하나로 집대성한 것”이라며 “북한의 불법행위를 제재 대상으로 특정한 미 행정부의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1718, 1874호)는 북한의 사치품 거래, 무기 거래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불법행위와 관련된 북한 기업이나 개인을 특정해 이들의 금융계좌를 차단하는 미 행정부 차원의 시행령은 없었다. 기존 미국 행정명령 13382호는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및 테러와 관련한 일반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북한 연루 사실이 밝혀지면 북한을 제재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북한의 불법행위를 미국의 금융시스템으로부터 차단할 국내법적 근거를 처음 만든 것이다.

불법활동 분야도 재래식무기 거래나 사치품 구입, 마약 밀수, 가짜담배 제조, 돈세탁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런 불법활동과 연루됐다고 지목될 북한 기업과 개인은 13382호에 따라 리스트에 오른 22개 기업과 개인 1명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기관과 개인의 블랙리스트를 발표한 뒤 이들과 거래하는 제3국 정부와 금융기관에 거래 중단을 외교적으로 설득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와 1874호가 규정한 ‘사치품과 무기 등 거래 금지’를 넘어 거래 주체의 자금줄 차단을 겨냥하고 있다.

아인혼 조정관은 안보리 결의안에 금지된 무기와 미사일 기술, 사치품 거래 금지 조항이나 해상 및 항공화물 검색 관련 조항의 이행도 관련국에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 외교관의 면책특권 남용 금지, 여행 금지 등도 논의했다.

미국은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한 BDA식 제재에서는 북한을 거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은행들은 북한과 거래하다 돈 세탁 은행으로 지정될 것을 우려해 불법계좌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북한 자산을 동결하고 신규 계좌 개설을 금지한 바 있다.

이번 조치에는 제재 대상이 불법행위와 관련된 북한 기관이나 기업, 개인으로 한정됐다. 그럼에도 평판과 신용도를 중시하는 금융기관으로서는 북한과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지 않으려고 북한과 거래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테러·금융범죄담당 부차관보도 이날 “국제금융기관은 미국이 주는 북한의 불법행위 관련 정보를 검토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며 “위폐, 돈세탁 등 불법활동에 연루된 (북한의) 주체는 새로운 조치에 따라 국제금융시스템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의회가 6월 승인하고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명한 이란제재법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제3국 금융기관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나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인혼 조정관은 제3국에 외교적으로 협조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제재법은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과 테러를 지원하는 이란 기관과 거래하는 제3국 은행까지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이란보다 국제금융이나 무역 편입도가 낮은 북한에 이란과 같은 포괄적인 제재를 적용하기 어렵고 제3국에 대한 제재 규정을 적용하기 위해 의회 승인을 받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미국이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인혼 조정관은 이날 “북한과 이란은 다른 케이스이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며 “각각의 경우에 부합하는 맞춤형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북 금융제재의 성공은 제3국, 특히 중국의 협조가 관건인 셈이다. 아인혼 조정관도 “중국이 대북제재에 매우 중요한 국가”라며 “중국의 지지가 필요하고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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