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측 조치’에 조목조목 맞대응… 개성공단 운명도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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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평통이 밝힌 1단계 대남조치 주요내용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25일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남북 당국간 관계를 전면 단절한다고 선언하고 1단계 실행조치들을 내놓았다. 북한의 이번 대남 조치는 남측의 천안함 폭침 사건 대응조치에 맞대응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8개항의 실행조치 중 처음 2개항은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나머지 6개항은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내용이다.》
대화단절
“이명박정부 임기동안…”
기간-내용까지 명시

작년 4월 이전으로 회귀
개성공단 논의 무산후 경색
천안함 폭침으로 파탄의 길


조평통 담화는 우선 남한 당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와 접촉을 일절 하지 않는다며 관계 단절의 기간과 내용까지 명시했다. 이는 2013년 2월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는 당국간 대화나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다.

○ 지난해 4월 이후 남북 밀월 이전으로 회귀

북한의 이날 선언에 따라 지난해 4월 북측의 개성공단 실무접촉 제의 이후 올해 2월 8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협상까지 간간이 지속됐던 남북 당국간 대화와 접촉은 ‘예외적인 기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남북은 크고 작은 10여 차례의 대화와 접촉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단절됐던 당국간 관계 회복을 시도했었다.

특히 남북은 지난해 8월 이후 비선 라인의 비공개 접촉과 통일부-통일전선부 등 공식 라인의 비공개 접촉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까지 모색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을 남측에 파견해 올해 안에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타진해 왔다. 정부는 이 문제를 놓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이끄는 비선 라인에 이어 통일부가 주도하는 당국간 라인을 가동해 북한과 접촉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평양 등 북측 지역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동시에 국군포로와 납북자 일부가 영구 귀환 또는 일시적으로 남측을 방문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이 함께 데리고 돌아오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최종 협상 과정에서 북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7일과 14일 개성공단에서 통일부와 통일전선부 사이의 당국간 논의가 무산된 뒤 남북관계는 경색 일로를 걸어왔다. 회담 중이던 11월 10일 대청해전이 터졌고 북한이 올해 3월 26일 천안함을 폭침시키면서 남북관계는 파탄의 길로 접어드는 수순을 밟았다.

○ 남북관계, 통민봉관(通民封官)으로 돌아가나?

북한은 2007년 12월 남한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2008년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이 대통령이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햇볕정책에서 탈피해 남한이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명백히 하자 2008년 4월부터 당국간 관계를 단절하고 민간 관계만 지속하는 이른바 ‘통민봉관’ 전술을 사용해 왔다.

북한은 2008년 3월 27일 개성공단 내 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남한 당국자들을 추방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권 길들이기’에 나섰다. 당국간 관계는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탄 두 발을 맞고 사망하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악화됐다. 북한은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온 뒤인 2008년 10월 이후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발송을 문제 삼아 정부를 압박했고 급기야 남북 육로 통행 제한 및 차단을 골자로 하는 ‘12·1 조치’를 발동했다.

북한은 2009년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한 정부를 ‘파쇼’라고 언급했다. 당시 한 당국자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남한 당국을 파쇼로 지칭한 것은 상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장거리로켓 발사(4월 5일)와 2차 핵실험(5월 25일) 등 무력시위를 편 뒤 돌연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남한에 대해 유화정책을 들고 나왔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 남북관계에 ‘제3의 길’은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기복을 거듭하며 단절에 이르는 과정은 북한 김정일 독재정권과 남한 보수정권 사이에는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도 실용을 외치며 보수와 진보라는 대북관계의 이념적 틀을 넘어서려 했지만 퇴행적 체제의 북한은 이에 호응하지 못했다. 남북관계에 대결과 대화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찾기란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2년 반이나 남은 이 대통령의 임기 동안 보수 정부의 정권 승계를 저지하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맺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승계하는 민주당 등 진보 세력의 집권을 돕는 것에 대남 사업의 목표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야당 등 현 정권을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민간 분야의 세력들을 추동해 장외에서의 통일운동을 부채질하며 국론 분열을 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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