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女후보 모셔라” 속타는 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3일 2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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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해야 하는데…
기초·광역의원 女후보 없으면
해당 지역구 공천 전면 무효
적임자는 없고…
수소문 끝 어렵게 설득해도
남편-시부모 반대에 수포로
편법으로라도…
후보연대 통해 규정 피하고
“부인 공천뒤 사퇴라도…”

#사례1
지난달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엔 '여성 구의원 후보를 모십니다'라는 이색 공고문이 붙었다. 이 지역 한나라당 A 국회의원이 6·2지방선거에 내보낼 마땅한 여성 구의원 후보감을 찾지 못하자 아예 지역의 여성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개 모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공모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결국 A 의원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여성 구의원 후보감을 찾아 달라"고 읍소한 뒤 가까스로 1명의 적임자를 찾을 수 있었다.
#사례2
이달 초 전북 전주의 민주당 소속 B 국회의원은 시의원 후보로 여성 2명을 전략 공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당 경력이 10년이 넘는 남성 예비주자들은 허탈해했다. "당을 지킨 우리 대신 아무런 기여도도 없는 사람을 여자니까 공천하느냐. 이건 '역차별'이다"라고 반발했다. B 의원은 "공천을 주고 싶어도 남성에게는 줄 수 없으니 어쩌겠느냐"고 하소연했다.

14일로 지방선거가 4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가 여성 후보 모시기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12일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발효되면서 국회의원 선거구(군 지역 제외)마다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중 1명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는 게 의무화됐지만 후보감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의무공천 규정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해당 지역구의 모든 공천이 무효화되는 강제조항 때문에 의원들의 속은 더 타들어 가고 있다. 여야가 여심(女心)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초단체장의 여성 전략공천에 나서는 분위기도 '여성 구인난'을 부추기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영남권의 한 중진의원은 기초·광역의원 선거에 나설 여성 후보자를 모시기 위해 남편과 시부모까지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최근 가까운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힘들게 한 명을 찾아서 설득해 놓으면 남편이 나서서 '정치할 거면 이혼하자'고 하고, 또 한 명을 구하면 시부모가 '집안 망하게 할 거면 선거에 나가라'고 해 틀어진다"며 "이렇게까지 해서 후보를 찾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6개 선거구 가운데 3곳의 여성 후보를 찾지 못한 민주당 대전시당은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과 야권 후보연대 협상을 통해 일부 선거구에 공천자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여성 후보 의무공천 규정을 피해갈 방침이다. 공직선거법은 '한 정당이 공천하는 후보자 수가 해당 지역구의 전체 기초·광역의원 정원의 2분의 1이 안 될 경우' 여성 후보 의무공천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13일 "나중에 보궐선거를 하더라도 당장 우리 마누라라도 일단 내보내든가 해서 법 규정을 따라야 할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여성 후보자의 등록이 무효가 될 경우 여성 의무공천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당의 기초단체장 여성 전략공천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서울 3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20곳 기초단체장에 여성을 전략 공천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지역구 의원들과 마찰을 빚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16개 시도에 1명씩 여성 전략공천 지침을 내려 보내긴 했지만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여성위원장인 이은재 의원은 "기초단체장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며 "기초단체장은 도저히 내기 어려우니 여성 도의원 공천자 수를 늘리겠다고 하는 지역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여성위원장인 김상희 의원도 "기초단체장 여성 공천은 상황이 어렵다. 준비된 후보가 아니면 공천을 받아도 당선이 어렵고 준비해온 남성 후보가 무소속 출마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장석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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