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예산 대치에 국정 발목잡힐 수 없다” 정면돌파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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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내 법안처리’ 강공
경제회복-민생안정 명분
강행처리도 배제 않을 듯
이미 예산안 단독심사 착수

■ ‘3자 회담’ 물건너가나
“4대강 삭감 내건 회동 불가”
최초제안 정몽준 ‘퇴로’ 택해
靑 신중모드… 여론에 촉각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당정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당정청 수뇌부 8명은 20일 저녁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만나 예산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 문제 등 주요 국정 현안을 조율했다. 올해가 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야당과 벌일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당정청 수뇌부가 여권의 일사불란한 대응 전략을 숙의한 셈이다.

○ 당정청 주요 국정 현안 조율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정운찬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 당정청의 핵심 인사들은 이날 회동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만약 31일까지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준(準)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준예산은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최소한의 국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사업에만 쓸 수 있다. 따라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저소득 치매노인 약제비 지원 등 서민과 직결된 신규 사업에는 한 푼도 쓸 수 없는 데 대한 우려를 정부 측은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이 이날 예산안의 연내 처리 방침을 재확인한 것은 경제 회복과 서민생활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워 야당의 강력한 저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당정청은 논란이 된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회담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정 대표가 16일 3자회담을 제안한 이후 여권 내부에서 사전에 긴밀한 의견 조율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17일부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3자회담 수용을 압박하고 나선 상황도 고려한 것은 물론이다.

당정청은 일단 정 대표의 이날 브리핑 내용에 공감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당정청 회의에 앞서 정 대표는 “민주당이 점거를 풀고 ‘4대강 예산을 깎자’는 전제조건을 철회해야 대화가 용이할 것이다. 조건을 내걸고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정청이 당분간 이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3자회담을 둘러싼 여권 내의 혼선을 서둘러 차단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일단 3자회담의 불씨를 살려 놓긴 했지만 민주당이 4대강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접지 않는 한 3자회담 논의가 추동력을 얻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 한나라당 “예산 정국 정면 돌파한다”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 정국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한나라당 정 대표였다. 정 대표가 제안한 3자회담에 청와대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하며 3자회담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3자회담을 놓고 며칠간 전개된 혼선의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예산 대치 정국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명분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이 거부하긴 했지만 안상수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와 예결위 간사가 만나는 4자회담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권에선 한나라당이 사실상 예산안 강행 처리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 일각에서는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민주당의 ‘약자 이미지 부각’ 전략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기류도 있지만 강경론에 밀리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은 이미 19일 오후부터 당 소속 예결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야당이 거부하더라도 심사는 제대로 해 본회의 처리 명분을 쌓겠다는 것이다. 친박(친박근혜) 측도 지도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려는 뜻은 없어 보인다.

○ 청와대도 예산처리 시급성 공감

청와대는 20일 여야 대치 상황과 관련해 별다른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예산안을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시급성엔 공감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지연이 자칫 경제 회생에 주력하고 있는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3자회담 자체에 대해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이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회담의 의제에 관해 협상하는 걸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라 3자회담에 응할지 말지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비치는 모습은 청와대로서도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참모는 “무턱대고 만날 수는 없다. 만나서 좋은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안 좋은 그림이 나오면 하나마나한 만남이 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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