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 화폐개혁은 사실… 국가가 富 관리 의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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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당국 공식발표 나와야 분명한 실체 알 수 있을듯”
데일리NK “10만원 이상은 1000대1로 교환 허가”

정부 고위 관계자는 2일 북한의 전격적인 화폐개혁에 대해 “국가(북한)가 (주민과 시장의 손에 있는) 부(富)를 가져와(빼앗아) 직접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2002년 북한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혁 개방과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이번 일은 우리 정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해석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한 2012년을 앞두고 북한 당국이 여러 국가적 프로젝트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부만 주민에게 새 돈으로 교환해주고 국가가 회수한 헌 돈은 폐기해 새 돈의 가치를 높인 뒤 국가가 새 돈을 발권해 국책사업에 쓰면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 없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번 화폐개혁은 2007년 10월 이후 계획·통제경제 시스템을 강화해온 정책들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한 계간 ‘경제연구’ 최신호는 “화폐 우상화가 화폐관계를 확대시켜 사회주의 경제관계를 좀먹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역중개상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중국 상품의 수입을 감소시킴으로써 북한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 당국 차원의 공식 정령(政令)이 나와야 분명한 실체를 알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최후 수단인 화폐개혁에 대해 공식 발표가 없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폐개혁에 따른 상품 가격과 임금 등에 대한 재평가 조치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는 2일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2일 오전 8시부터 전국적으로 화폐교환을 실시했다”며 “6일까지 화폐 교환이 계속된 뒤 7일부터 신권이 유통된다”고 전했다. 이어 “10만 원 이상도 1000 대 1로 교환을 허가했다”고 전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발행하는 ‘NK IN&OUT 23호’는 “신권 지폐 100원권에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고 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北 화폐개혁 성공할까… 전문가 진단
北, 저항 부를 위험한 도박… 외화 의존도 높아질 것

《북한이 지난달 30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의 내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이 어떤 후속 조치를 할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폐개혁 자체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어떤 조치들이 뒤따르느냐에 따라 북한 당국의 의도와 북한 경제에 미칠 영향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화폐개혁이 정권안보 차원의 단기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민들의 저항과 암시장의 확대 등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책 신뢰도 추락 최대 손실
암시장 확대 등 부작용 클 듯
美 대북 식량지원 재개땐
경제 빠르게 안정될 수도


○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번 조치로 국가가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고 노동당과 군대 등 특권경제에 소속된 친(親)김정일 정권 세력이 시장 세력을 압도하게 됐다. 국가는 주민들이 가진 돈 가운데 10만 원만 새 돈 1000원으로 바꿔주고 나머지는 휴지로 만들었다. 반면 국가는 얼마든지 새 돈을 찍어낼 수 있다. 국가는 이 돈으로 임금을 줘 시장에 떠돌던 주민들이 공장 등 일터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또 이번 조치로 달러나 위안화를 가진 권력집단의 경제력이 시장을 통해 살아온 일반 주민들에 비해 엄청나게 강화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가가 새 돈을 찍어 기간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간산업의 성장이 다른 부분에도 파급돼 산업 전반이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북한 지도부가 너무 위험한 도박을 한 것 같다. 이번 조치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중국의 개혁개방 사례에서 보듯이 이행기의 사회주의 국가는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선 민간기업가를 육성하고 국영기업을 이들과 경쟁시키며 경제를 재건해 나가야 한다. 이번 조치는 김 씨 부자의 3대 세습에 필요한 일부 특권계층의 ‘경제 권력’을 강화하려고 시장 세력을 말살하겠다는 것으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손실은 국가 정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 주민들은 언제라도 휴지로 변할 수 있는 북한 돈 원이 아니라 달러나 위안화 등으로 거래를 하려 할 것이어서 북한 경제의 외화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암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국가경제는 형해화할 가능성이 높다.

○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팀장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물이나 금융부문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 베트남도 화폐개혁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고, 동시에 가격 자유화 등을 통해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면서 개혁개방 경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상황은 이런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화폐개혁은 그 자체로 비용이 많이 든다. 우선 새 돈을 만들어내야 하고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큰 비용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 등을 통해 실물부문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에 대한 상품 공급을 원활하게 할 만큼 성과가 났다고 할 수 없다.

○ 이정철 숭실대 교수

북한이 8일로 예정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실시한 것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북한의 화폐개혁이 성공할지는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재개될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지난해와 같이 50만 t가량의 대북 식량지원을 하면 화폐개혁으로 혼돈에 빠진 공식 경제가 빠르게 안정될 수 있다. 외부에서 식량이 지원될 경우 이를 배급해 주민들의 식량 사정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배급 가격을 현재 헌 돈 45원에서 600∼800원(새 돈 6∼8원)으로 올리면 재정수입도 늘릴 수 있다. 오른 쌀 가격에 맞춰 기타 상품과 서비스의 국정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격 개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식량지원이 없다면 화폐개혁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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