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웅]미소금융, 빌리면 반드시 갚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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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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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친서민정책을 표방하면서 다양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소(美少)금융이 될 것 같다. 영어의 Microfinance를 번역한 말인데 이름이 그럴듯하다. 매우 적다는 뜻의 미소(微少)와 웃음을 뜻하는 미소(微笑), 거기에다 적은 것이 아름답다는 미소(美少)가 겹쳐서 들린다.

소액 무담보 신용대출의 성공조건

소금융이 진정 아름다운 소액 금융이 되려면 무엇보다 부실화되지 않고 진정한 금융기능으로 발전해야 한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원래 은행 거래를 할 수 없는 신용상태가 낮은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액 무담보 신용대출을 말한다. 정부는 이런 사업을 위해 재계 및 금융기관으로부터 앞으로 10년 동안 2조 원 규모의 기금을 출연토록 한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등 일부 민간단체가 정부재정 지원, 민간의 기부금 및 소액서민금융재단의 자금지원을 받아서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을 했다. 특히 작년에 금융회사 휴면예금을 출연해서 소액서민금융재단을 설립한 후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이 확대됐다.

그러나 아직도 수요에 비해 지원 규모가 미흡하다. 재원을 대폭 확충하고 서민의 금융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서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한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이용이 어려운 저신용층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이다. 재계와 금융권으로서는 저소득층의 자활지원을 위한 자금을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려 한다. 또한 제도권금융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여 서민과 영세자영업자의 고금리 부담도 경감하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밀어붙이는 미소금융재단이 과연 금융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저신용 서민에게 빌려준 돈을 제대로 회수하고 더욱 많은 서민에게 재투자해야 한다. 돈을 빌린 서민은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을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액신용 대출이 공돈이나 사회복지비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돈을 빌려주면 반드시 갚도록 해야 한다.

은행이 빈민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이유는 돌려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서다. 무담보 신용대출을 받은 서민 역시 돈을 안 갚아도 잃을 것이 없으므로 일단 빌리면 갚을 생각을 안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실은 몇 년 전 소액신용대출의 대부분이 부실화되는 바람에 서민금융기관이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증명한다. 2003년 크레디트 카드 대란도 사용자의 신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대량 발급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에도 정부가 서민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소액신용대출 및 신용카드 발급을 적극 장려했다.

그라민 은행의 리스크관리 참고를

그라민 은행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먼저 대출 희망자 5명을 1조로 구성한 후 이 중 2명에게 먼저 대출을 했다. 대출 기간은 대개 1년인데 2명이 잘 갚아야만 나머지 사람에게 차례가 돌아간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상호지급보증 또는 연좌제와 유사한 리스크 관리구조를 만들었다. 자기가 안 갚으면 동료가 피해를 보므로 돈을 갚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런 리스크 관리구조를 통해서 대출상환율 98%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미소금융의 성공 조건은 이 사업을 자선사업이 아닌 진정한 금융사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돈을 빌린 사람이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도록 만들 수 있는지에 이 제도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민의 자립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또 하나의 선심성 퍼주기에 그칠 수 있다.

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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