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사교육 치맛바람’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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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입학 경쟁 치열
월 20만원 고액과외 성행
중산층 한달 생활비 맞먹어

사회주의 평등교육 이념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에서 최근 평양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인과외가 크게 성행하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북한에서도 돈을 번 부유층이 늘면서 최근 1, 2년 새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사교육 학원이 따로 없는 북한에서 개인과외는 학생들이 식량을 메고 선생 집에 찾아가 먹고 자면서 지도를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입시 과외는 선생 한 명에게서 여러 과목을 동시에 지도받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다(多)과목 교사의 경우 인기 교사는 학생 1명당 월 북한 돈 20만 원(약 6만 원)을 받는다. 20만 원은 현재 시세로 쌀 100kg을 살 수 있는 큰돈으로 중산층 가족이 한 달 남짓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이다. 입시과목뿐 아니라 특기 과외도 성행한다. 피아노는 5만∼10만 원, 기타 악기는 3만∼5만 원, 춤은 1만∼2만 원, 태권도 3만 원 선이다.

과외 교습엔 중고교 선생은 물론이고 대학교수도 가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학력이 좋은 일반 직장인들도 과외교사로 나서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북한에서 개인과외가 성행하는 이유는 대학의 입학 정원은 늘지 않는 데 반해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계속 늘면서 갈수록 대학 입학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군에 갈 수 있도록 병역제도가 바뀌면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바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또 부정입학을 위한 뇌물 액수가 최근 수천 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부유층들은 뇌물 대신 가정교사를 고용해 자녀의 학력을 높이는 방식을 더 선호하게 됐다.

하지만 개인과외가 성행하면서 북한의 중고교 공교육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자발적으로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들이 큰돈을 벌 수 있는 개인과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이런 열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이처럼 사교육 열풍의 부작용이 나타나자 개인과외 적발을 강화하는 등 사교육 근절을 위한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단속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외 단속에 나서야 할 당 간부가 자녀 사교육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당 간부와 중산층 가정의 아줌마들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과외선생을 찾고자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등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개인과외가 성행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머릿속에는 ‘지식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고가 싹트고 있다. 오랫동안 평등 교육이 지배한 북한에선 그동안 지식은 공짜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지식인들은 가장 어렵게 사는 계층으로 전락해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노동력이라도 팔 수 있지만 지식은 사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무엇을 배우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북한 소식통들은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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