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무력 감축’ 엇갈리는 남과 북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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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자주포-GP 철수로 한반도 안정 노려

무리한 예산 계획으로 파행을 거듭한 국방개혁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남북 재래식무기 감축 논의가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한 위협전력을 감축 또는 철수하고 한국군도 전방지역 일부 전력과 병력을 감축하는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뒤 이를 상호 검증한다면 군비경쟁으로 낭비되는 국력의 소모를 줄이고 한반도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래식 군축이 추진된다면 북한이 휴전선에 전진 배치한 전차와 장사정포가 우선 협의 대상으로 꼽힌다. 군 관계자는 “서울에서 50여 km 떨어진 북측 갱도진지에 배치된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 300여 문을 후방으로 옮기거나 기습공격이 부족한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군축협상 초기 북한이 전차 400∼800대를 보유한 전방의 4∼8개 사단을 해체하거나 감축하면 대남 기습능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 한국도 군사분계선(MDL) 부근의 자주포 등 일부 기계화전력을 후방 배치해 남북 간 군사적 안정성이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수도권 이남에 대규모 특수전 요원을 침투시키기 위해 운용 중인 잠수정과 반잠수함, AN-2기, 휴전선 인근 서해기지에 배치된 공기부양정 130여 척과 고속상륙정 90여 척도 주요 감축 대상이다. 군 관계자는 “이 전력들은 대표적인 기습침투 무기로 평시활용도가 적고 감축해도 북한의 전체 군사력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비무장지내(DMZ) 내 60여 개의 남북한 전방소초(GP)를 공동으로 철수하는 문제도 거론된다. 기관총 등 중화기가 배치된 GP로 인해 DMZ 내에선 남북 간에 일촉즉발의 충돌 가능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런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2005년 7월 GP 공동철수 방안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남과 북의 정규군 병력은 각각 65만5000여 명과 119만여 명이다. 예비 병력은 남한이 304만 명, 북한이 770만 명이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北] 군 병력은 체제유지 수단… 감축 꺼려

남한에선 재래식 무력 감축이 막대한 국방 예산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남한의 2배에 가까운 재래식 무력을 운용하는 북한은 별로 매력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군 유지가 북한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랜 경제난으로 민심이 등 돌린 상황에서 군은 폭발력이 강한 젊은 세대를 강제적으로 묶어둘 수 있는 수단이다. 일자리도 없는데 병력 감축으로 청년들이 사회에 방출되면 사회 불안만 커지게 된다. 게다가 북한은 ‘선군정치’를 표방하며 군 병력을 대규모 공사와 농업 생산에 투입하고 있다.

북한이 재래식 군 병력 유지에 들이는 비용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핵 개발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대신 남한과의 재래식 군비 경쟁은 오래전에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0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을 먹여 살리기는 힘들지만 북한에선 군이나 민간이나 국가가 배급을 줘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측의 대규모 경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전제로 북한이 재래식 무력 감축 제안에 응할 수는 있다. 북한이 얼마를 요구할지도 문제지만 실질적 무력 감축까지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

우선 남북의 무기체계를 계량화해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은 반세기 넘은 노후 장비를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일한 수치를 감축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한국군 기계화사단이 북한군 기계화사단 몇 개와 맞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도 합의하기 어렵다.

또 양측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실례로 남측은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와 미사일 제거가 시급하지만 북측엔 서울을 압박하는 유일한 카드다. 이 때문에 북한이 장사정포와 평양 공습이 가능한 공군 감축을 연계하는 식의 비교 불가능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특히 북한은 오래전부터 재래 무력 감축을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시켜 왔다. 더욱이 남북 사이에 사회문화적 교류나 경제협력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높은 신뢰가 뒷받침돼야 할 남북 동시 사찰이 가능한지도 불투명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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