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조문단, 南서 ‘김정일 담화’ 읽을듯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15분



■ 주목받는 ‘조문정치’
‘우리민족끼리’ 주장… 정부 대북정책 압박 가능성
정부에 직접 통보 안해… ‘통민봉관 전술’ 노림수도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대남 ‘조문정치’의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일 조전(弔電)을 보내고 고위급 조문단 파견을 지시했다고 알려왔다. 조문단은 특히 남한 체류 중 김 위원장의 ‘담화’를 읽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남 화해 국면 조성을 앞당겨 향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 서거 정국의 새 관심사로
올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비교하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전은 빠르고 내용도 풍부하다. 북한은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이틀째인 5월 25일에야 조전을 보냈다. 내용도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건조한 내용이었다. 반면 김 전 대통령 서거 하루 만에 온 이번 조전은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며 고인을 찬양했다.
북측이 예고한 조문단의 지위도 상당하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부장 등 5명을 보내겠다고 밝힌 점에 비춰 2005년 ‘8·15민족대축전’ 때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는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위원장, 생전의 김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난 적 있는 이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이 조문단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담화를 통해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찬양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우리 민족끼리’와 민족 화해 협력의 정신에 따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조문통지도 ‘통민봉관’
북한은 이번에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에게 중국 베이징(北京)을 경유한 국제 팩스로 전보를 보내 조문단 파견을 통지했다고 김 전 대통령 측은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당국 간 채널로 온 통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전형적인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과는 대화하고 당국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 전술에서 이뤄진 것으로 남측 사회를 교묘히 분열시키려는 고도의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조문단이 방한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실무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이 밝힌 대로 특별기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입국하기 위해서는 남한 영공 내 항공기 운항과 남한 방문 승인 등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북한의 조문정치 역사
북한은 과거에도 남한의 중요 인사가 사망했을 당시나 이후 추모행사에 조전과 조문단을 보내 애도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문정치를 활발하게 전개해 왔다. 통일부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북한이 조전이나 조문단 등을 보낸 경우는 모두 7차례다. 이 중 조문객을 보낸 것은 3차례다.
북한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 4명을 보냈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추모행사가 열린 금강산에 송 부위원장을 보내 추모사를 읽도록 했다. 2006년 5월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장례식장(스위스 제네바)에 이철 북한대표부 대사가 조문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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