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평화가 피의 대가임을 잊지말길”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2002년 2차 연평해전서 부상
7년만에 유공자 인정받은 고경락-김면주씨

“늦게나마 나라지킨 노력 평가받아 기쁘지만
불면 - 악몽 등 격전 후유증은 현재진행형”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해 이 증서를 드립니다….”

11일 낮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원보훈지청장실. 권영봉 지청장에게서 국가유공자(전상 7급) 증서를 전달받은 고경락 씨(28)와 김면주 씨(29)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에 앞서 2004년 유공자(전상 6급) 판정을 받은 곽진성 씨(30)도 옆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지켜봤다.

고 씨와 김 씨는 4년여 동안 각각 4, 5차례에 걸친 유공자 신청 끝에 이날 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그동안 두 사람의 부상 정도가 유공자 판정에 필요한 상이등급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매번 탈락했지만 추가 심사를 통해 비로소 전상 판정을 받게된 것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뀐 뒤 제2연평해전 추모 행사가 격상되는 등 늦게나마 목숨 걸고 조국을 지킨 전우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아 기쁘다”면서도 7년 전의 참상을 떠올리자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달아올랐던 2002년 6월 29일. 고, 김, 곽 씨 등 세 사람은 해군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탑승했다가 서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을 받았다. 고 씨는 함교 소총수(병장), 김 씨는 M-60 기관총 부사수(상병), 곽 씨는 M-60 기관총 사수(하사)였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아군의 경고방송을 무시하고 최대한 접근해 함포로 기습도발을 감행했다.

아군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적을 격퇴하고 NLL을 사수했지만 정장(艇長)인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고 씨는 오른팔, 김 씨는 왼쪽 허벅지와 왼팔에 각각 파편상을 입었다. 곽 씨도 온몸에 총탄과 포탄 파편을 맞았다.

김 씨는 “세월이 흘렀지만 많은 부상 장병들은 지금도 당시의 상흔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체의 상처는 세월이 흘러 아물었지만 적탄이 빗발치고 바로 옆 전우가 피투성이로 쓰러진 처참한 전장을 경험한 장병들의 심리적 충격과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기 안양시의 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전기기사로 근무하는 김 씨도 오랫동안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다 지난해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PTSD)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다. 그는 “일부 부상 장병은 돌발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공황 상태를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 씨도 2년 전까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 만큼 증세가 심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잠들 수 없어 밤새도록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다 지쳐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증세가 악화돼 다니던 회사를 몇 개월 만에 그만두는 등 힘든 나날을 보냈죠.”

특히 목숨 바쳐 영해를 지키고도 좌파정권 내내 홀대와 냉대가 계속되자 참전 장병들은 큰 상실감과 비애를 느꼈다고 이들은 전했다.

고 씨는 지난해부터 김 씨의 권유로 병원 진료를 받으며 심리적 안정을 많이 회복했다. 고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곽 씨의 도움이 컸다. 곽 씨는 군 시절부터 아끼던 고 씨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격려하면서 자신이 다니던 방위산업체(LIG 넥스원)에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왔다. 회사 경영진도 두 사람의 전우애와 고 씨의 사정을 배려해 지난해 고 씨의 입사를 결정했다.

곽 씨는 “생사를 함께한 전우이자 동료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고, 경락이도 잘 극복해 준 것 같아 가슴 뿌듯하다”며 “전우이자 직장동료로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가장 크게 다친 박동혁 병장이 병실을 찾은 동료들을 향해 떨리는 손으로 거수경례를 하자 모두 함께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박 병장은 3개월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이들은 북한은 남한이 방심하는 틈을 노려 언제든지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확고한 안보태세 없이 언제까지 평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층이 갈수록 안보 문제에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영웅들이 흘린 피땀의 대가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1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끝낸 ‘세 전우’가 주위에 꼭 전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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