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피눈물 아리랑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북한이 주민 10만여 명을 동원해 벌이는 종합예술공연인 아리랑공연을 이달 10일 개막하기 위해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공연의 한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이 주민 10만여 명을 동원해 벌이는 종합예술공연인 아리랑공연을 이달 10일 개막하기 위해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공연의 한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北, 올해도 아리랑공연 10일 개막… 탈북자들이 전하는 인권유린 실상
학생들 6개월~1년 연습
하루 20시간 넘기기도
빵 한조각-사탕이 식사
맹장염 치료 못받아 사망
인대파열-골절 수두룩
6세 아이에게 매질까지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1874호에 따라 본격적인 대북 압박에 나선 가운데 북한이 이달 10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공연을 개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31일 “북한은 아리랑공연의 8월 10일 개막을 목표로 매일 유치원생과 청장년층까지 동원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며 “2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한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줄고 있는데도 해외 주재 북한 공관과 상사원, 웹사이트를 통해 아리랑공연 관람객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아리랑공연은 대집단체조(매스게임)와 카드섹션, 음악, 무용을 결합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2002년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해 시작됐고 2005, 2007, 2008년에도 열렸다.

아리랑공연에는 주민 10만여 명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놀라울 정도로 잘 짜인 아리랑공연에 대해 2008년 9월 노동신문은 “우리의 장하고 미더운 청소년 학생들의 높은 정신세계가 안아 온 열정의 산물”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 친척이 아리랑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는 탈북자들은 일사불란하게 한 몸처럼 움직이는 화려한 공연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충격적인 인권 유린의 실상을 고발했다.

○ 무리한 훈련 받다가 숨지고

평양 출신의 한 탈북자는 “아리랑공연의 카드섹션 부문에 참여했던 한 학생이 공연 연습 도중 맹장이 파열됐지만 그 자리에서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며 “북한 당국이 취한 조치는 죽은 학생에게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준 것뿐”이라고 증언했다.

탈북자들은 집단체조 동작을 반복하다가 근육과 인대가 파열되고 골절을 당하는 학생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그런데도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고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집단체조를 위해 억지로 다리 벌리는 연습을 하다가 여러 학생이 한 명을 무리하게 눌러 탈골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 화장실 못 가 배뇨장애 걸리기도

탈북자들은 학생들이 오전 4시에 일어나 다음 날 오전 1, 2시까지 연습이 계속되는 날이 많은데도 저녁 식사를 빵 한 조각과 사탕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이 빈혈과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사촌동생이 아리랑공연을 대비한 훈련을 받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졌지만 별다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며칠 쉰 뒤 다시 훈련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더위를 먹은 아이들이 하루에 수십 명씩 쓰러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탈북자들은 많은 인원이 함께 연습해야 하는 단체공연의 성격상 북한 당국이 학생들에게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물을 거의 주지 않고 소변을 참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배뇨 장애와 방광염 등의 질환을 호소하는 학생도 많다는 것이다.

○ 고된 훈련에 몽둥이찜질까지

아들이 아리랑공연에 출연했다는 한 탈북자는 “부모 곁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인 여섯 살배기 아들이 공연 연습 도중 동작을 잘 익히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도원에게 맞고 벌을 서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탈북자들은 훈련 중에 동작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지도원에게 가차 없이 구타나 몽둥이찜질을 당한다고 전했다.

아리랑공연 준비를 위해 6개월에서 1년간 훈련에 동원된 수만 명의 학생은 수업을 방학 때 몰아서 받거나 아예 졸업을 연기해야 한다. 교육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훈련에 동원된 학생들의 옷과 신발을 북한 당국이 지원하지 못해 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부모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공연 참여자들은 대가로 텔레비전이나 재봉틀, ‘공연 참가증’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탈북자는 “남한과 해외에서 많은 사람이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북한을 찾는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들이 지불하는 입장료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쓰이는지, 북한의 이면에 감춰진 비참한 현실에 눈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