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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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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가 이어지던 106일 동안 서울 광화문 일대엔 폭력이 난무했다. 경찰의 통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고, 밤이 되면 복면을 쓴 시위대가 등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시위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확성기로 반정부 구호를 외쳤고, 길을 가던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다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법은 무기력했다. 불법 폭력 집회를 통제하고 평화적 시위를 보장해야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제 기능을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집시법 개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여야 의원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집시법 개정안을 쏟아내 무려 15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또한 지금의 집회 시위 문화가 ‘과연 시위인지, 아니면 폭동인지’를 놓고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현행 집시법 한계”
현행 집시법의 무기력이 드러나자 현직 경찰 고위간부가 시위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촉구했다. 임승택 경기지방경찰청 1부장은 2009년 발표한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 ‘불법 집회·시위에 대한 합리적 대응방안’에서 “현행 집시법은 비폭력 시위에 적용될 수 있는 법으로 가두시위나 장기간 폭력시위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 부장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위와 폭동의 중간 형태인 ‘다중사태’ 개념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의 시위를 집시법상 시위로 보기에 한계가 있다면 논의를 거쳐 집시법상 시위 개념과 차별화된 다중사태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형법처럼 다중사태 기준에 의거해 폭력시위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집시법은 평화롭게 모여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규율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현재 집회는 이를 넘어 형법상 소요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국민감정 등을 고려할 때 소요로 처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과격한 집회를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집시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 집시법 문제엔 공감…해법은 ‘정반대’
집시법의 한계에 대해선 여야가 공감하지만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반대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 고려 없이 입법 취지와 실행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석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는 각 조항의 허실을 보여 준다.
확성기 소음과 관련해 민주당 강창일 의원 등은 집회 현장의 소음을 소음진동규제법으로 처벌할 수 있으니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안을 냈다. 반면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 등은 시위 비참가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확성기 사용 제한 대상자 확대와 처벌 강화를 제안했다. 검토 보고서는 “집회의 권리만큼 일반 시민들의 평온한 생활권도 존중받아야 할 기본권임을 감안할 때 확성기 사용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벌칙 조항에 대해서도 여야는 의견을 달리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 등은 처벌 완화와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 침범에 대한 벌칙 삭제 등을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등은 벌금형의 상한 기준을 현실에 맞게 인상하는 안을 냈다. 검토 보고서는 “실효를 위해 1989년 기준이 정해진 벌금액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범위에 대해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야당 의원들은 △집시법 5조(폭력이 분명하게 예상되는 집회 등을 원천 금지)의 삭제 △금지통고제도 폐지 △야간집회 및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시위 금지 및 국회의사당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 금지 제도 폐지 등을 개정안에 담았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공공질서 위협이 명백한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이며 “현 시위문화 속에서 국가 주요 시설의 안전을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며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여당 의원들은 △집회에서 사용할 목적의 쇠파이프 등의 제조 보관 운반행위 금지 △신원 확인을 방해할 목적의 복면 착용 금지 등을 개정안에 담았다. 검토 보고서는 “위해물품 반입 금지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과잉금지 원칙에 저촉될 수 있다” “복면 착용 금지의 경우 불법 폭력시위로 발전할 가능성과 복장 선택의 자유 등을 비교해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사안별로 의견을 냈다.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는 “평화적 시위가 열린다면 이상적으로는 집회시위에 대한 통제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그러나 우리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통제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