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남북한 윈윈게임은 가능한가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15년 전 1차 북핵위기 때의 일이다. 외무장관으로 국회에 불려나갔는데 어느 의원이 “북한은 우리에게 적대국인가 동지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다”고 대답하였다. 오늘날 같은 질문을 받더라도 나의 대답은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남한은 북한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동지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반면 북한은 남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남측은 이른바 ‘비핵 개방 3000’ 구상이 북을 돕기 위한 상생 공영의 정책이라고 설명하는 데 반해 북은 대결을 위한 적대적 정책이라고 반발한다. 남과 북은 왜 이렇게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가?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임을 자처한다. 공산주의는 태생적으로 적대적 관계와 투쟁을 중요시한다.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공산주의 이념의 근간이다. 국제적으로도 다른 나라를 적과 동지로 양분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내부 단합과 정권의 지속을 위해서도 적대적 관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을 적대시하면서도 그것이 남한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한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한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계급투쟁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요시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집단과 계층이 동등한 발언권과 권익을 주장할 권리를 갖는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양분법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상호의존성과 공동이익을 중요시한다.

적이자 동지인 숙명적 관계

남북한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체제와 정권의 유지이다. 북한은 또한 개방을 최소한으로 허용하면서도 경제 회생을 이끌어 내야 한다. 남한으로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정책의 최우선 과제이다. 북한의 비핵화도 중요한 정책목표가 아닐 수 없다.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남북한 간의 이산가족 상봉과 재결합,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 사회적인 교류와 협력의 확대도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점한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몇 가지 중요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하나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부유한 남한이 빈곤한 북한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력 충돌의 경우 북한이 남한에 피해를 줄 수는 있으나 이길 수는 없다. 북한의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공동 이익은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이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결핍, 에너지 부족, 기간시설 확충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경제 복구는 남한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한의 경제가 잘되어야 북한을 지원하고 협조해 줄 수 있다. 핵문제가 해소되어 남한과 북한이 경협 파트너가 될 때 양측에 커다란 경제적 혜택이 올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상생 공영’할 때 주변 강국의 인정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남북한 불화의 틈새에서 어부지리를 취할 가능성도 없어진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도 남북의 공동 목표가 될 수 있다. 양측은 모두 통일을 염원한다지만 내용과 방법에는 사실상 동상이몽이라고 할 만큼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다. 각자의 체제나 권력을 상대방과 공유할 수도 없고, 따라서 그럴 의도도 갖지 못한다. 남측이 베트남식 통일을 경계하고, 북측이 독일식 통일을 경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南의 상생의지 北에 보여야

윈윈게임이란 장기나 바둑, 스포츠 경기와 같이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이 아니고 경기자들이 결과에서 모두 이득을 보는 게임을 말한다. 윈윈게임을 위해서는 첫째 경기에서 공동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게임을 해보겠다는 용기와 의지라고 하겠다.

남북한은 윈윈게임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에 집착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남한의 민항기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에 어떻게 윈윈게임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납득시키느냐는 점이다. 당분간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성의를 갖고 북한을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윈윈게임을 하겠다는 의지를 북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백하게 하는 것이 북한을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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