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병 요청?”질문에 클린턴 “…”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李대통령 클린턴 美국무 접견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20일 청와대를 예방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양국 현안을 놓고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李대통령 클린턴 美국무 접견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20일 청와대를 예방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양국 현안을 놓고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한미 외교장관 회담

“핵폐기 없인 타협도 없다” 北통미봉남 쐐기

한미관계 ‘문화-가치동맹’ 업그레이드 합의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청와대를 예방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스마트파워가 시대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이 인준청문회에서 미국의 외교정책 기조로 정치·군사 및 경제력을 중시하는 ‘하드파워’와 문화 및 가치관에 초점을 두는 ‘소프트파워’를 조화시키겠다고 얘기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러나 16일부터 아시아 순방에 나선 클린턴 장관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하드파워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6자회담 틀 안에서 하겠다던 ‘북-미 양자회담’ 얘기도 한국에선 거론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와 경고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여전히 잊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달라 보인다.

▽북핵 폐기가 북-미 관계 변화의 출발=클린턴 장관은 20일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가진 여성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평양을 방문할 생각이 없다”며 “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고위급 접촉을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핵 폐기에 나서지 않는다면 어떤 타협도 없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에 대해 ‘할 말은 다 하겠다’는 인상을 확실히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가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언급한 북한의 승계 문제는 북측이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는 또 “한국의 민주주의와 번영의 달성은 군사분계선 위쪽의 북한 폭정 및 기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클린턴 장관이 순방에 나서기 전인 13일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미국은 관계 정상화, 평화조약 체결, 에너지 지원, 경제 지원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과 온도 차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따라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모든 관련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6자회담에 피해를 주는 모든 도발적 행동을 종식해야 한다”고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이 한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두고 협박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할 경우 국제적 협력을 추구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정책과 한참 거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미 동맹 및 기타 현안=클린턴 장관은 한미 관계에 대해 “지역적 관계를 넘어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평화 등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전략적 동맹”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4월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21세기의 안보 환경에 부응하는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하고 실무 협상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당시 미국의 차기 정부 출범 후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이를 잠시 미뤄 놓았다.

향후 한미 간 논의 방향은 명확하다. 클린턴 장관은 “우리의 파트너십은 대외적으로 전 세계에서 좀 더 다양한 기회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욱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은 물론 문화, 가치의 동맹으로 한 단계 격상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진전을 위한 노력도 한미관계 강화 차원에서 다뤄졌다.

▽아프가니스탄 지원 협력=한미 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재건에 대해 계속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현재 우리 정부가 아프간에 파견한 민간재건팀(PRT)의 규모와 역할 확대, 경찰 훈련요원 파견 방침 등을 설명했고 클린턴 장관은 이에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은 ‘한국 정부가 아프간에 파병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우리는 친구이며 동맹이다”라며 “(한미 양국이) 미래에 뭔가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상황에 따라서는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더 많은 나라의 파병이 필요한 미국이지만 아직은 미국도 아프간전쟁의 방향을 재검토하고 있어 파병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재검토가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방한이어서 그런지 클린턴 장관이 한미 양국 간 현안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상징적 선언을 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도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역정을 설파하는 데 역점을 둔 것도 이런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