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땐 파장 커져” vs “리더십 이미 타격”

  • 입력 2008년 9월 17일 02시 55분


한나라 ‘곤혹’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실패로 사의를 표명한 홍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경모 기자
한나라 ‘곤혹’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와 홍준표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실패로 사의를 표명한 홍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박경모 기자
한나라 의총 ‘홍준표 거취’ 격론… 추경안 처리 이후로 결론 유보

“유임해야” 8명에 “사퇴해야” 7명 맞서

홍준표 “원내대표직 계속할 생각 없다”

한나라당이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무산 이후 홍준표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놓고 내홍에 휩싸였다.

유임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가던 홍 원내대표의 거취는 16일 의원총회에서 예상보다 심한 반대에 부닥치면서 추경예산안 처리 이후로 논의가 유보됐다.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의원 16명 중 홍 원내대표가 유임해야 한다는 의원은 8명, 사퇴를 촉구한 의원은 7명, 중립적인 의원은 1명이었다.

▽팽팽한 홍준표 유임·사퇴론=이날 비공개 의총이 시작되자마자 홍 원내대표는 “모든 게 제 잘못이다. 의총 결과에 따르겠다”며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함께 의총장을 떠났다.

의총 초반에는 친(親)박근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홍 원내대표 옹호론이 많았다.

이정현 의원은 “원내 사령탑이 정기국회 기간에 바뀌는 건 옳지 않다”며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 국내외적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물러나라고 하는 것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희 의원도 “누구를 탓하기 전에 이번 일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다음번엔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지금 사퇴하면 원내대표를 새로 뽑아야 하고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텐데 누가 책임지느냐”며 현실론을 내세웠다.

이어 손범규, 나성린 의원 등도 홍 원내대표의 유임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후 친이명박계인 진수희, 권택기, 김용태, 정태근 의원 등이 잇달아 발언대에 나와 사퇴 불가피론을 밝히면서 의총장의 기류가 급변했다.

김용태 의원은 “정기국회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법안 처리가 많은데 손상된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어 나갈 순 없다”며 “추경예산안 처리 불발은 해프닝이 아니라 구조적인 참사”라고 홍 원내대표를 정면 공격했다.

권택기 의원은 “정치인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이미 한 만큼 책임지는 게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첫 출발이다”라며 “‘원내대표 대안부재론’을 말하는 분도 있는데 3선 이상 중진 의원이 많다”고 가세했다.

안형환 의원도 “당 대표와 원내대표 간에 역할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연말에 당정 개편을 해야 한다는 홍 원내대표의 발언은 당 대표에 대한 항명으로까지 보일 수 있다”며 “거취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한 만큼 책임지면 된다”고 사퇴를 압박했다.

이에 고승덕, 권영진 의원이 “누가 원내대표를 맡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사퇴할 것이냐”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주광덕 의원이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지도 못하고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는 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맞서면서 홍 원내대표의 거취 논란은 가닥을 잡지 못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마무리 발언에서 “일단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추경예산안 처리 문제는 홍 원내대표가 맡아 완결하도록 하고 인책 문제는 그 이후에 논의하자”고 정리했다.

▽홍 원내대표 리더십에 상처=추경예산안 처리 후 홍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전망이 엇갈린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의총에서 ‘유임론’과 ‘사퇴론’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것 자체가 홍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이미 큰 상처를 입었다.

이날 의총장에서는 “가부간에 표결하자”고 웅성거리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많았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추경예산안 통과 이후 의총에서 다시 논의될 경우 표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홍 원내대표의 사퇴 쪽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박 대표가 기존의 홍 원내대표 옹호에서 ‘선(先) 추경 처리, 후(後) 사퇴 재론’ 방침으로 물러선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정기국회 일정상 다시 원내대표를 선출하기에는 시일이 촉박하므로 추경예산안을 무난히 처리하면 정기국회까지는 현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직후 “원내대표직을 계속 수행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개인적으로는 없다. 추경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거취와 관련한 문제를 바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 표결로라도 처리 의지=한나라당은 야당과 추경예산안 처리를 위한 논의를 하겠지만 안 될 경우 이번 주에 표결로라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박 대표는 이날 의총에서 “국민에게 (한나라당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줘야 한다”며 “야당과 논의하면서 한 이틀 양보해 보고, 그래도 민주당의 귀가 안 열리면 우리도 최후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12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4조2678억 원 규모의 원안을 관철시킨다는 방침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사진부 박경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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