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없다” 단호… “마찰 줄여라” 차분

  • 입력 2008년 7월 14일 02시 56분


독도 경비 이상무 독도 경비대원이 12일 오후 동해를 주시하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독도=연합뉴스
독도 경비 이상무 독도 경비대원이 12일 오후 동해를 주시하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독도=연합뉴스
■ 정부, 日 독도 영유권 명기 추진 대응법

靑 “외교경색 불사” 결연… 여야 오늘 독도 방문

“국제사회에 분쟁으로 비치면 손해” 신중론도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일본 정부가 중고교 교과서 집필의 지침서인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의 영유권을 명기하는 정책을 발표하는 날(14일)을 하루 앞두고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대응 원칙을 정했다.

청와대는 이날 외교 채널을 가동해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과 같은 도발적 표현은 아니지만 수위를 낮춘 표현을 통해 독도가 영토 분쟁 대상지라는 점을 적시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공을 들여 왔던 한일 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일본 정부가 독도 문제를 이렇게 다룬다면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말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외교통상부는 13일 “우리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겉으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정부는 이날 오전 한나라당과 긴급 당정회의를 개최하면서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 이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14일 독도를 방문하기로 한 것은 이날 당정회의 직후에 결정됐다.

일본 교과서 해설서 문제가 처음 알려진 5월 이명박 정부는 강경한 대응 카드를 내놓았다. 이 대통령이 ‘단호한 대처’를 공개적으로 지시할 정도였다. 당시는 쇠고기 촛불 정국이 절정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정부 관리들은 이번에는 ‘마찰음은 최소화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는 14일 오후 일본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면 주한 일본대사 초치(招致)에 이어 필요하면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를 ‘업무협의 형식으로 일시 귀국’시키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정부 내에는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는 시각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한국이 1945년 독립 이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이 사안을 국제분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통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앞 다퉈 독도를 방문하고 규탄 성명을 낭독하는 장면이 외신에 보도되면 ‘한일 간에 영토 분쟁이 있다’는 인상만 남길 뿐”이라며 “일본은 바로 이걸 노린다”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이 점유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釣魚 섬)에 2004년 중국 활동가들이 ‘중국 영토’를 주장하며 상륙 시위를 했을 때 일본의 공안당국은 시위대를 체포하며 강경 대응했다. 그러나 일본 외교당국이나 언론은 차분하게 국제적 관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었다.

반면 일본은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북방 4개 섬(러시아명 쿠릴 열도) 문제는 때만 되면 거론하면서 이슈화하는 이중 전략을 써 왔다.

또 현실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으로 돼 있는 일본의 중고교 교과서가 많은 상황에서 중학교 해설서에 비슷한 설명을 넣을 수 없다고 일본에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한국 정부의 고민이다.

일본 고교 교과서는 대체로 ‘한국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중학교 교과서도 14종 가운데 4종이 ‘독도 분쟁’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치권과 인터넷에서 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족주의적 접근이 국민의 반일감정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특히 쇠고기 정국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 점도 고려할 요인이다.

일본 업무에 정통한 한 퇴직 외교관은 13일 “조용한 외교가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일 관계의 특수성상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는 정치적 요구를 무시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독도 문제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日 언론 ‘독도’ 보도

요미우리“한국배려 표현 조정”

산케이“독도는 일본땅 명기”

일본 정부는 14일 중학교 사회교과서의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에 대한 기술(記述)을 강행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표현을 찾기 위해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피하는 방법으로 한국을 ‘배려’하기로 하고 최종 조정 작업을 벌였다”고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주무 관청인 문부과학성이 당초 독도에 대해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竹島)’라고 기술할 방침이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12일 현재까지는 러시아가 일본의 북방 4개 섬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하면서 이어 ‘고유의 영토’라는 표현 없이 독도에 대해 기술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표현을 넣을지에 대해서도 검토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3일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한 표현 방식을 둘러싸고 막판 조정에 들어갔다”며 “일본 정부는 국내 여론을 주시하면서 한국 측도 일정 부분 배려하는 표현을 씀으로써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은 11일 “어떤 표현을 사용할지 생각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요미우리 등의 보도와 달리 국수주의적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13일 “마치무라 관방장관과 문부성, 외무성의 논의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고 명기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전했다.

약 10년에 1번꼴로 개정하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민간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만들거나 일선 교사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 지침으로 사용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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