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돌연 김만복 사표수리 유보… 왜?

  • 입력 2008년 1월 17일 02시 56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난해 10월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맨 오른쪽이 김만복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지난해 10월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맨 오른쪽이 김만복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상회담 속사정’ 드러날까 우려한 듯

檢, 뒷거래설 등 파헤치면 남북관계 전반 불똥

“여론 떼밀린 人事 싫다” 盧대통령 의중 반영도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사표 수리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가 미묘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인수위는 사건의 진상 규명 및 사법 처리를 위해 김 원장이 민간인 신분으로 조속히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16일 “내부적인 판단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날의 ‘조기 사표 처리’ 방침을 유보했다.

이는 김 원장의 ‘평양 대화록’ 유출 사건의 성격 규정에 대한 두 기관의 견해 차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기관 사이에 감지되는 저류는 심상치 않다.

김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국정원 요직을 두루 거쳤다. 역대 정보기관장들의 불행한 말로에서 증명된 것처럼 국정원 수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어떤 ‘진실’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에 두 기관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 영상편집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인수위와 청와대의 힘겨루기=인수위는 15일 김 원장이 지난해 대선 전날 방북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유출한 사실을 시인하자 검찰이 조속히 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측근은 이날 “검찰이 스스로 수사에 나서기 부담스럽다면 인수위가 고발을 해서라도 이 기회에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노릇이나 하는 관행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김 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해 노 대통령의 국정 행위와 관련해 국정원이 알고 있는 ‘비밀’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역력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김 원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16일 돌연 김 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를 유보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표 수리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표 수리를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게 청와대의 기류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안에 대한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 외에 여론에 떠밀려 정부 고위직의 진퇴를 결정하지 않아온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은?=그러나 청와대가 사표 수리를 미루는 진짜 이유는 김 원장의 사표를 서둘러 수리할 경우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 전반으로 불똥이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갑작스러운 남북 정상회담 성사로 정치권에서는 ‘뒷거래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 원장의 대선 전날 방북 이유도 ‘정상회담 식수 표지석 설치’라는 본인의 해명이나 ‘북풍(北風) 기획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의 방한 문제 논의설’ 등이 아닌 다른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국정원에 정통한 한 인사는 “무엇이든 북한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일일 것”이라며 “2006년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북한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임기 말의 청와대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선 후 김 원장의 행보도 청와대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수위 관계자는 “김 원장이 대선 후 ‘직접 보고할 것이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의 자리 주선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 당선인 측근들과의 만남도 시도했다.

한 대북 정보 전문가는 “청와대는 김 원장의 사표를 수리할 경우 더 많은 비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검찰 ‘비밀누설’ 여부 법리검토 착수

‘김경준 입국’ 측근개입 여부도 수사▼

대검찰청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유출한 것이 형사 처벌 대상인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검찰은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김경준(42·구속 기소) 씨의 입국 배후에 김 원장 측근이 개입됐는지를 확인 중이어서 김 원장에게 ‘또 다른 뇌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법리적 검토=대검은 우선 김 원장이 유출한 대화록 14부의 원본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화록의 내용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김 원장이 이 원본을 어떤 경로로 전달했는지도 파악 중이다.

김 원장이 대화록 유출을 시인한 만큼 검찰은 그 내용이 ‘비밀’에 해당되는지와 유출 행위가 현행법 위반인지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수사기관인 검찰로서는 대화록의 내용이 비밀이어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래야 형법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 대화록을 비밀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대화록의 비밀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판례에 따르면 비밀로 분류하지 않더라도 국가안보 등 외부에 유출되지 않아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비밀로 인정된다.

검찰 중견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어디를 방문해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다 공개된다면 정보활동이 되겠느냐”면서 “당연히 비밀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화록은 국가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아 비밀 가치가 낮거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정원장이 형법상 비밀누설 혐의 외에 형량이 더 높은 국정원직원법 적용 대상인지도 논란이다. 국정원직원법에 국정원장의 비밀엄수 조항 위반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처벌 규정은 애매한 상태다.

검찰 내부에서는 “일종의 입법 미비로 국정원장도 당연히 처벌 대상”이라는 견해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정원장은 처벌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 원장의 측근 관여 확인 중”=김경준 씨의 기획입국 배후를 수사 중인 검찰은 김 원장의 측근이 관여했는지 확인 중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김 씨가 미국에서 수감되어 있던 로스앤젤레스의 구치소 접견기록을 요청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미국 구치소의 접견기록이 도착하는 대로 김 씨의 입국을 전후해 누가 김 씨 측을 집중적으로 접촉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지난해 한나라당은 김 씨의 입국 과정에 국정원 인사가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국정원 직원이 김 씨를 접촉해 조기 입국을 종용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수사 핵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정원 직원의 관여가 사실로 확인되면 국정원 조직의 특성상 문제는 직원 개인을 넘어 수장인 김 원장에게까지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김경준 씨는 최근 “검찰이 아니라 특검에서 조사받겠다”며 검찰 출석을 거부하고 있어 수사 속도가 더딘 편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