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제회생 10년 헛수고 자인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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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대국 - 먹는 문제 해결”… 올 신년사설 과거 구호 재탕

북한이 새해 첫날 발표하는 신년 공동사설에는 북한 경제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들이 담긴다. 1일 발표된 2008년 사설에도 열악한 경제 상황이 드러났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시작한 1989년 이후 북한 신년사의 키워드를 모아 보면 ‘경제 몰락 20년 약사(略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올해 공동사설에서 김일성 주석 출생 100년이 되는 2012년에는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 놓으려는 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밝혔다. 5년 뒤에는 강성대국이 된다는 말이다. 북한은 또 ‘인민생활 제일주의’와 ‘먹는 문제 우선 해결’을 강조함으로써 마치 인민경제의 회복에 전념할 것처럼 선전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해묵은 구호의 ‘후퇴’ 내지는 ‘재탕’에 불과하다.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 구호를 처음 내건 것은 1999년. 당시 북한은 ‘이미 사상, 정치, 군사 강국이므로 경제 강국이 될 일만 남았다’고 대내외에 선전했다.

‘먹는 문제 우선 해결’도 김 주석 사망 이후 3년 동안의 유훈(遺訓) 통치를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7년 10월 조선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외부 추산에 따르면 이미 20만∼350만 명이 굶어 죽은 뒤였다.

김 주석 생전에 나온 ‘인민생활의 향상’이라는 오래된 구호도 ‘제일주의’를 달고 다시 새로운 것인 양 등장했다.

결국 올해 공동사설은 ‘10년을 노력했지만 강성대국은커녕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 경제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2006년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냈다.

과거 신년 공동사설에는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답도 있다. 고위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이미 1989년 세계 청년학생 축전 개최를 고비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은 1994년이다. 위기에 대한 인식이 늦어졌기 때문에 대응이 빠를 수 없었다.

북한은 베트남이나 쿠바와 같이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과감하고 유연한 개혁개방 정책을 단행하지 못했다. 1996년 공동사설을 통해 ‘고난의 행군’이라는 위기 인정 및 극복의 담론을 내세웠지만 때를 놓친 처방이었다.

북한대학원대 양문수 교수는 “2000년대 단행된 북한의 경제 개혁정책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1990년대 위기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제조업 등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이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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