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놀음…끼어들기…검증할 틈도 없었다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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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했던 후보 검증

“생각 같아서는 강재섭 대표 얼굴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후보 시절인 11월 12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구 경북 필승결의대회 연설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내 경선에서 강 대표가 정당 사상 처음으로 후보 검증청문회를 도입하는 바람에 모진 검증을 받은 것에 대한 서운함을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후보였던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는 엄격한 검증 절차 과정 탓에 사생활까지 낱낱이 파헤쳐지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범여권은 탈당과 창당 등 이합집산을 거듭하느라 검증다운 검증을 받지 못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출마를 선언해 사실상 ‘무검증’ 상태로 대선을 치렀다.

그 바람에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비방 폭로)만 난무했고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검증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치러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이명박 당선자만 혹독한 검증

한나라당은 7월 TV로 생중계되는 검증 청문회를 실시했다. 청문위원으로 나선 각계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출생, 병역, 납세, 건강보험료를 비롯해 이 당선자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당시 이 당선자 측은 검증청문회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강 대표는 “예선에서 제대로 검증해야 본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범여권의 네거티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로 청문회를 강행했다. 실제로 이 당선자는 청문회 직후 지지율이 30% 후반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당선자는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국정감사 등에서 범여권의 검증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는 국세청장 등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도 ‘이명박 검증’이 이루어졌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검증다운 검증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5월 이후 6개월 만에 2번의 당 대 당 통합과 4번의 창당 또는 당명 개칭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었지만 당 구성원 정강정책 등은 그대로여서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검증의 장을 열어 국민의 시선을 모으고 있을 때 범여권은 ‘창당놀음’만 한 셈이다. 신당은 두 달도 안 되는 경선 기간 몇 차례 토론회를 했지만 부실검증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선출 후보의 경쟁력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15, 16대 대선에서 검증을 받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1월 12일 출마를 선언해 도덕성과 자질 검증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정책 검증조차 받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그의 이미지와 이념 성향 정도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후보 선출 시기 앞당겨 검증 실효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정당별 후보자 선출이 늦어진 것이 부실 검증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전국 38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07대선시민연대’와 공명선거실천협의회는 20일 기자회견에서 “2002년에는 각 당 후보들이 8월 이전에 선출돼 검증 시간이 충분했지만 이번 대선은 그렇지 못했다”며 “확실한 검증을 위해서는 늦어도 대선 6개월 전에는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는 “대선 전해에 각 주의 법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해 자연스럽게 후보 검증이 이뤄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미국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240일인 예비후보 활동 기간을 늘려 그 기간에는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하고 정당별로 후보자가 결정되면 일정 시점까지 공약집을 내도록 해 자연스럽게 정책 검증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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