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미얀마 기차 이야기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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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폭풍우의 바다와 같은 격한 흔들림.’

지진이나 토네이도의 묘사가 아니었다. 일본 철도 전문가가 쓴 안내서 ‘기차타고 지구 한 바퀴’(사쿠라이 칸 지음·소담출판사)에 나오는 소제목이었다. 저자가 소개한 것은 ‘미얀마의 철도’였다.

“양곤을 출발하자 나는 새파래졌다. 좌석에 꼭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상황이다. 발차하고 나서 5분이 안 되어 옆 좌석 승객이 그로기 상태가 되었을 정도이니까.”

‘과장이 지나친 것 아닐까’ 싶었지만 몇 달 뒤 우연히 손에 넣은 DVD ‘기차로 떠나는 세계여행’(Travel the World By Train·TV아사히 제작)이 의구심을 해소해 주었다. 요동치는 객실에서 미얀마 승객들은 체념한 듯, 또는 멀미를 막으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기차가 뒤집히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를 표방한 군부가 이 지경을 방치했나?”

동원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2005년 양곤에서 내륙 깊숙한 행정수도 ‘네피도’로 깜짝 천도를 단행하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뛰어난 동원 능력으로 사회간접자본(SOC)만큼은 손색없이 해 놓았을 것’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민생’에 관한 한 기대를 저버리는 사례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소련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시베리아 횡단철도 탑승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 벅찬 경험에 처음 도전했던 사람들도 대국의 기간교통망이 처한 열악한 화장실 상황에 기가 질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기술력을 가졌다. 왕년에 실력이 상당했던 것 같다.” 북한 서해갑문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의 소감이다.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쓴 뒤 돌아와서까지 감회를 털어놓은 것을 보면 매우 강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장비 없이 맨손과 삽으로 완성한 갑문이 수많은 사상자를 낳아 ‘시체갑문’으로 불린다는 증언을 들은 기자로서는 그다지도 찬탄할 만한 일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갑문이 홍수 방지 등 수많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도 그렇다.

북한의 기차는 어떤 상황일까. 생각난 김에 탈북자인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기관차 부품이 제때 조달되지 못하니 속도를 못 내고 자주 고장 나 걷는 편이 빠를 때가 많습니다. 사고가 났다 하면 사상자가 보통 수백 명씩이지만 쉬쉬하고 말죠.” 인권지수에서 세계 최하 1, 2위를 다투는 북한과 미얀마는 기차 상황도 흡사한 모양이었다.

벼랑 끝의 핵 대결에서 일단 성공을 거둔 북한의 미래는 얼핏 낙관적으로도 보인다. 미국과도 교류가 이어져 평화협정과 수교를, 나아가 경제협력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의 관심사에 의존한 즉흥적 사업과 편중된 투자가 이어지는 한, 새 돈줄로 민생 복리는커녕 정권의 공고화를 기하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민주주의, 민주적 시장경제, 개방과 협력, 평화와 공존의 질서로 발전해 왔고 발전해 갈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이 독일에서 출간된 책 ‘권력자의 말’에 기고한 글이다. 북에 ‘개혁 개방’이란 말도 꺼내기 힘들어하는 상황이지만 책에 쓰인 말만큼은 진심이라고 믿는다. 북의 정권도 귀 기울여 보기 바란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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