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영토선 아니면 휴전선도 경계선 아니다”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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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남북의 합의하에 그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이 사실을 전제로 이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NLL이 그어진 경위가 국제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NLL 문제의 쟁점화를 시도하는 노 대통령의 의도를 미국에선 어떻게 해석하는지 12일 미국 내 국제법 및 군사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스탠퍼드대 법학대학원 마리아노 플로린티노 케야르(국제법 전공) 교수

―NLL은 1953년 유엔군 사령관이 그었다. 이 점이 해상 군사분계선으로서의 합법적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500년 전 국제법을 만들 때 취지는 국경선의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 나라에서 경계선을 긋는 결정 과정은 자의적으로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경계선을 긋는 것은 단순하거나 객관적이지만은 않은, 정치적 현실을 인정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법적으로 어떤 경계선이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것인지를 결정할 때는 당사국들이 이를 어떻게 여겨왔는가가 특별히 고려된다. 쌍방의 합의가 있었는지가 국제법적 정당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남북한 간 서해 경계선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남북한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를 존중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국제법정에서도 ‘그 선이 양측에 의해 국경선으로 인정됐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양측이 공식적인 성명을 통해 ‘현재의 라인은 일시적 군사적 점령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뿐 국경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천명해 왔다면 국경선으로서 인정받는 가치가 떨어진다.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점령했다고 해서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되지 않듯이 군사적 점령이 국경선을 자동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남북한이 NLL을 바꾸려 하면 당초 이 선을 책정한 유엔군사령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이 이슈에 대해 군사적 역할이 있었지만 영토주권은 없다. 실질적 과정에선 동맹관계인 미국과 협의해야 하겠지만 국제법적으로 미국의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

○ 미 해군대 조너선 폴락 전략문제 연구소장

―남북한 간에 NLL 재조정 논의가 이뤄질 경우 미 행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미국은 의견이 있어도 개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물론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이 너무 많이 나아가려 한다면 매우 불편해할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진정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을 만한 분명한 이유를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수년간 NLL 문제를 한국의 방위 태세를 시험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해 왔다.”

―만약 NLL 협상이 진행되면 다른 한반도 현안에도 영향을 미칠까.

“미국은 핵 문제가 여타 사안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다. 최근 주한 미국대사 등이 강조했듯이 평화협정도 핵 프로그램 완전 폐기라는 거대 이슈가 이뤄지기 전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반면 노 대통령은 여러 이슈들을 동시에 추구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이슈가 한미군사동맹과 대북 억지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으로 넘쳐 들어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안보 담당자들은 한국정부가 안보관련 사안을 신중하게 추진하면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 관계는 북한이 미국을 여전히 적대적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비한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가정하에 성립돼 있기 때문이다.”

○ 미 해병참모대 브루스 벡톨 교수

―국제법적으로 NLL은 문제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당사국들이 오랜 기간 인정하면 그 선은 실질적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1999년까지 북한은 전반적으로 이를 인정했고 지금도 꽃게잡이 철을 제외하곤 경계선을 지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NLL을 (영해의) 경계선(border)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NLL은 만들어졌을 때부터 실질적으로 양측 군대가 순찰하고 지키는 해상 경계였기 때문이다. NLL 남쪽에 있는 5개 섬은 보호되어야 하고 NLL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노 대통령은 헌법이 한반도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음을 들어 영토 안의 영토 개념이 헷갈린다고 했다.

“그런 논리라면 휴전선은, 비무장지대(DMZ)는 뭐라고 규정할 것인가. 그런 정의(定意) 방법이라면 휴전선도 영토 경계선이 아니다.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가 한국 정부임에 동의하며 통일을 바라지만 그때까지는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영토 경계선이 필요하다. 경계선에는 해상 경계선이 있고 육상 경계선이 있다. 휴전선이 그러했듯 1953년 이래 NLL은 실질적으로 남북한 사이의 해상 경계선이었다.”

―서해평화지대를 위해 NLL을 사실상 무력화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솔직히 나는 바로 그게 노 대통령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 수 있는 임기가 남아 있지 않다. NLL을 무력화하면 5개 섬의 안보에 큰 문제가 생기며 서해안 지역 주민들의 안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국의 안보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눠 봤는데 그들도 걱정을 했다. 북한이 서해 접경지역에서 군사력을 철수한다는 징후는 없다. 북한은 해·공군력은 물론 지대지 미사일 기지도 그 지역에 가지고 있다. NLL 조정은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만 한다. 그리고 유엔사령부가 어떤 형태로든 토론에 포함될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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