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힐’… 저돌적 추진력으로 막힌 핵협상 뚫어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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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전격 단행한 6·21 평양 방문은 그의 승부사 기질이 한껏 발휘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24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꼼꼼한 실무 능력보다 저돌적 추진력을 앞세운 힐 차관보의 외교 방식이 대북 돌파구를 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연출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했지만, 공연 구상 및 주연은 단연 힐 차관보의 몫이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워싱턴에서 힐 차관보는 “실무형 외교관이라기보다 정치 협상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한때 의회에 파견돼 스티븐 솔라즈 하원의원을 보좌한 경력을 제외하면 1970년대 말부터 30년 한길을 걸어 온 직업 외교관이다.

한 소식통은 “그의 승부사 기질은 꼼꼼한 일본식 외교관보다 통 크게 풀어 나가려는 한국 외교와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 일본보다 한국 정부 관리와 더 의기투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섬세한 사전 작업보다는 평양에서 보낸 1박 2일 동안 ‘현장 담판’을 통해 역량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북한 핵을 “외교로 푼다”는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백악관 참모들이 힐 차관보의 정치적 품성을 놓고 “너무 야심만만하다”며 견제를 했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

힐 차관보에게 올 상반기는 롤러코스터에 오른 시기였다. 맞수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는 1월 베를린 회동 이후부터 파열음을 줄여가며 호흡을 맞춰 왔다.

한 소식통은 “힐의 끊임없는 농담에 시큰둥하던 김계관이 처음으로 웃으며 화답한 곳이 베를린”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교분을 통해 2·13합의가 이뤄진 올 2월 6자회담에서 김 부상은 힐 차관보와 악수를 하면서 다른 손으로 그의 등을 툭 치며 “이번에 끝냅시다(let's finish this)”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가 전면에 나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된 2500만 달러의 송금 문제를 약속해 준 뒤 문제가 엉켜 버렸다. 이 바람에 올 4, 5월 그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한 소식통은 “금융에 무지한 국무부가 덜컥 약속을 해 버리는 바람에 일이 어긋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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