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헌소 청구…‘대통령’에 대한 경고, ‘개인’ 문제로 돌려

  • 입력 2007년 6월 2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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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 심판청구 법무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시민’ 소속 변호사가 21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 헌재 직원들이 청구서를 살펴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 심판청구 법무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시민’ 소속 변호사가 21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 헌재 직원들이 청구서를 살펴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자신의 잇단 정치성 발언에 대해 공직선거법 9조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국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의 헌법소원 제기는 헌정 사상 처음 이다.》

▽“기본권 침해당했다”=청와대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 또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선관위 결정으로 노 대통령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당한 만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헌법소원 주체를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개인 노무현’으로 했다.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느냐는 법적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선관위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한 문제 발언은 모두 ‘대통령 노무현’ 자격으로 한 것”이라며 “청구 주체와 선관위를 청구 대상으로 한 것 모두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한 대통령에 대해 국민으로서 누리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헌재도 대통령이 기본권을 가진 주체임을 인정했다?”=청와대는 헌재의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사건 결정문을 인용해 노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낼 주체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주장은 한 측면만을 너무 부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헌재 결정문은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에도 대통령 직의 중요성과 자신의 언행의 정치적 파장에 비춰 그에 상응하는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수 있도록 총괄 의무가 있으므로 당연히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지는 공직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경고는 대통령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청와대는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의 장래 발언 행위의 자제를 요청하는 사실상 경고”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선 선관위 결정이 선거법의 법률조항을 확인한 것에 불과해 대통령의 권리를 새롭게 제한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변호사는 “헌법소원은 공권력 행사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며 “선거법 9조가 위헌이라면 청와대는 대통령 취임 1년 이내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청와대가 제시한 외국의 선거법 사례에 대해 강경근 교수는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며 “미국에선 대통령이 임기 중에도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왜 강행하나=청와대는 법리적 비판을 무릅쓰더라도 대선 정국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 공간을 확보하는 게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헌법소원 논쟁이 계속될 경우 노 대통령은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지속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이 헌법소원 카드를 통해 대선구도 재편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적 논란이 증폭될수록 친노-반노 대결구도가 선명해지면서 노 대통령이 부정적 반응을 보인 대통합 작업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헌소 청구맡은 법무법인 ‘시민’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 청구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시민’은 현 정부에서 첫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고영구(70) 변호사가 대표를 맡고 있고, 사법개혁을 주도했던 김선수(46) 전 대통령사법개혁비서관 등 8명의 변호사가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출신인 고 변호사는 1990년대 초 당시 민주당에서 노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한 적이 있다. 현 정부에서는 2003년 4월 국정원장에 임명돼 2005년 7월까지 재직했다.

민변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수 변호사는 1985년 사법시험 27회에 수석 합격했다. 서울대 재학 때 민주화운동을 하다 군에 강제 징집됐을 때 신병으로 배치받은 전방부대에서 유시민 전 복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복무한 인연도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정치권 반응

정치권은 21일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 제출이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 대통령의 진짜 의도는 헌법소원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자는 것”이라며 “대선판을 흔들고 친노(親盧·친노무현) 세력 결집과 좌파정권 연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윤호중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국정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헌법소원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헌법소원을 거둬 달라”고 요구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 양형일 대변인도 “노 대통령의 헌법소원은 시기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현직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정 질서를 경시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고 했고,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도 “대통령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헌법소원을 냈다는데,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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