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前의장 불출마 선언 파장…열린우리 해체 가속도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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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2일 국회 브리핑룸에서 2007년 대선 불출마와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종승 기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2일 국회 브리핑룸에서 2007년 대선 불출마와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종승 기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이른바 범여권의 대통합 추진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단순히 ‘범여권 대선주자’란 틀에서 보면 김 전 의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고건 전 국무총리(1월 16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4월 30일)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대선 예비주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득권이 ‘제3지대 신당’ 창당의 최대 걸림돌이었다는 점에서 정동영 전 의장과 함께 당내 양대 지분을 갖고 있던 김 전 의장의 ‘기득권 포기’ 선언은 범여권 대통합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 받는다.

▽1987년 양김 분화 소개=김 전 의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1987년 대선을 언급했다. “1987년 민주세력이 분열하고 양김(김영삼 김대중) 씨가 분열할 때 대선을 교도소에서 맞이했다. 밤 12시 30분쯤 교도관에게 ‘투표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니 ‘몰라서 묻느냐’고 했다. 지금도 그 상황을 잊을 수 없다.”

김 전 의장은 “2007년은 1987년의 재판(再版)이 돼서는 안 된다”며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대통합을 촉구했다. 범여권의 지지부진한 상황이 그 당시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

그는 최근 들어 불출마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첫 대선예비후보 연석회의 무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전언이다. 김 전 의장은 이날 불출마 선언에서도 스스로 “6월 민주항쟁 기념일 하루 전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11일 오후 4시 측근 의원들과 참모진에게 불출마 결심을 알렸다. 한 측근은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지시’였다”고 소개했다. 의원들과 참모진은 김 전 의장의 서울 도봉구 창동 자택 앞에서 밤을 꼬박 새운 뒤 이날 아침 김 전 의장의 출근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엔 분명 지지도 1%대란 현실적 장벽이 작용했다. 그러나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지지율 1%대의 범여권 대선주자가 10여 명이란 점에서 단순히 지지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범여권 인사들의 평가다. 김영춘 의원은 “지지도가 낮다고 대선주자란 자리를 던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 문외한”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2선 후퇴’ 압박?=김 전 의장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김혁규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조건 없는 국민경선 참여 선언’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향후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에선 이날 김 전 의장의 결단이 사실상 정 전 의장에겐 2선 후퇴를 압박한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범여권에선 열린우리당 탈당 여부와 계파를 막론하고 범여권 대통합 작업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통합의 기반조직이 형성될 때까지 김근태 정동영 두 전직 의장 등의 ‘2선 대기’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정 전 의장도 이를 의식한 듯 “범여권에 있는 분이라면 대통합에 대해 이의를 달지 못한다”면서도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출마는 의미가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범여권 대선주자군의 교통정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김 전 의장에 이은 제4의 낙마자가 누가 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장 김 전 의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여 온 천 전 장관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가속도 붙는 열린우리당 해체=열린우리당 해체 속도도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8일 초재선 의원 16명이 탈당한 데 이어 인천과 충청 출신 의원 30∼40명이 당 지도부에 주어진 통합시한인 14일 직후 동시 집단탈당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의 권역별 집단행동이 본격화하고 3, 4명 단위의 소그룹 탈당이나 개별탈당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세균 의장은 이날 범여권 대통합의 일정과 관련해 “9월에 경선을 해서 10월 초 대선 50일 전쯤 민주개혁세력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며 “7월 중순까지 대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하며, 8월부터는 본격적인 후보 경쟁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거꾸로 노무현 대통령과 일부 친노(親盧·친노무현)계의 세는 상당부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합론을 지역주의 회귀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구태정치를 하려거든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라”는 직격탄을 맞은 직후란 점에서 김 전 의장의 기득권 포기는 노 대통령 공세를 차단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 180도 다른 반응을 내놓은 점도 주목된다. 박상천 대표계인 유종필 대변인은 “국민 지지도와 여건을 종합해 볼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김효석 원내대표 등 ‘대통합파’는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가 열렸다”고 환영했다.

대선 후보라는 ‘주인공’에서 대통합 ‘연출가’로 바뀐 김 전 의장. 범여권의 1차 대통합 시한인 7월 중순까지,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김 전 의장이 보여 줄 정치력에 범여권 각 정파와 대선주자들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조수진 기자 sjcho@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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