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노무현 식 리걸 마인드

  • 입력 2007년 6월 10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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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캠퍼스가 있는 서울 신림동 주변엔 고시원, 고시텔이 즐비하다. 2∼4평 정도에 침대 냉장고 TV 컴퓨터 등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갖추고 있다. 입실료는 월 30만∼50만 원대. 1980년대 초 사법시험 정원을 300명으로 대폭 늘린 뒤 매년 100명씩 추가 증원하면서 고시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이젠 마을을 이룰 만큼 성업이다. 방도 보통 40∼50개씩 된다.

다른 대학 주변에도 고시원이 많다. 사시를 비롯한 국가고시와 취직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전 한적한 시골에 드문드문 자리 잡아 주로 사시준비생을 맞았던 고시촌의 정경과는 판이하다. 옛 고시촌의 공부방은 문 앞 디딤돌에 흰색 또는 검은색 고무신만 덜렁 놓여 있어 적막한 절간과 다름없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법률가가 되겠다는 많은 고시준비생이 고시원에 틀어박혀 법서(法書)만 달달 외우다시피 하는 점이다. 강의실을 등지고 공부해서 설사 합격한다 해도 ‘리걸 마인드(legal mind)’ 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법대 교수들의 우려다.

리걸 마인드란 법률가에게 필요한 법적 소양과 사고방식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의 기본 정신을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쟁점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法治)주의 이념에 대한 신념과 통찰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소양은 독학으로는 습득하기 어렵다.

사시 정원 1000명 시대인 요즘은 다른 분야 전공자들도 시험 대열에 대거 끼어든다. 많은 교수와 법조인 등이 법대 교육의 정상화를 외치고, 사시 응시자격을 법학 전공자에게만 줘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리걸 마인드는 정상적인 법학교육 과정과 캠퍼스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지 외워서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판사 변호사를 지낸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해석이 매우 독특해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럽다. 그의 해석은 가히 ‘창의적’이라 할 만하다. 그의 리걸 마인드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의하면 그는 가난과 싸우면서 끊임없이 권위에 도전하며 자랐다. 사시 합격은 상고 졸업과 군복무, 결혼생활, 막노동 등 온갖 악조건 속에서 독학 10년 만에 이룬 ‘인간 승리’였다. 고향에 직접 지은 토담집과 인근 절에서 공부했다.

5년 전 대선을 몇 달 앞두고 현재 법조계의 요직에 있는 사시 17회 동기생은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요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법조인은 사법연수생 시절의 노무현이 튀는 언행을 자주 했다면서 대학 동문 중심으로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관심을 끌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 자신도 저서에서 비슷한 얘기를 써 놓았다. “처음 얼마간은 외톨이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제일 곤란했다. 다들 패거리를 지어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나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서성거려야 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 내가 외톨이란 걸 눈치 챈 몇몇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며 나를 자기 패거리에 끼워 주었다.”

다수설(多數說), 통설(通說)이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마저 무시하는 노 대통령의 리걸 마인드는 아무래도 비주류(非主流)의 성장 환경과 관련 있는 듯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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