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학계 “위원장 2표를 행사한 셈” 선관위 결정 비판

  • 입력 2007년 6월 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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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결정 내린 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위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연합)
7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결정 내린 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위원들이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연합)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 발언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표결방식 등이 논란을 낳고 있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공무원의 중립의무 사항’은 위반했지만 사전선거운동에는 해당되지 않고, 참평포럼도 사조직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선관위의 법 해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먼저 사전선거운동 부분에 대해 선관위원들이 ‘찬성 4표, 반대 3표’로 이미 위반 결정을 내렸음에도, 위원장이 투표에 참여하고 결정권까지 행사한 것은 법을 어긴 행위라고 말했다.

또한 참평포럼과 관련해서도 대선과 내년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구성된 노 대통령의 친위조직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사전선거운동 아니다” VS “헌법 위반하며 노 대통령 구제해준 것”=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초 위원장을 제외한 7명의 투표 결과 4 대 3으로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의견이 앞섰다. 그러나 고현철 위원장이 막판에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혀 4 대 4 동수가 됐고, 이어 ‘가부동수 결정권’을 행사해 표결 결과를 뒤집었다.

이에 대해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8일 “한 사람이 두 표를 행사한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법에 어긋난다”며 “9명이 참석해 4 대 4 동수가 됐을 경우 위원장이 한 표를 던지는 게 결정권이다. 이번처럼 한 표를 던진 뒤 결정권까지 행사한 건 두 표를 던진 거랑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0조 2항에는 ‘위원장은 표결권을 가지며 가부동수인 때에는 결정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한 선관위의 해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또한 “헌법 제49조에 따르면 다수의견을 채택하지만, 결정권은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과반수가 되면 의사가 결정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라며 “선관위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이 법을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관위의 결정은 헌법 4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석연 변호사도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에서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다가 ‘사전선거운동 위반’에서는 한 표를 던져 결과를 바꿨다”며 “이는 대통령 입장에 서서 대통령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결국 대통령을 구제해준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야당과 소속 대선주자들을 폄훼한 행위가 고소고발 대상도 아니고 사전선거운동도 아니라고 결정을 했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그럴 거 아니겠느냐”며 “선관위는 선거관리의 최종 주체로서 갖춰야 할 공정성을 스스로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표결방식과 별도로 “선관위의 상황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선관위 결론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본다”면서도 “선관위는 판단의 근거로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청중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 점을 들었지만 이는 문제가 있다. 장소와 청중은 참평포럼으로 국한돼 있지만 내용이 모든 국민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소에서 했건 텔레비전에 출연해 생중계로 했건 결과적으로 다 똑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참평포럼, “사조직 아니다” VS “법 문구만 놓고 해석”= 선관위는 참평포럼의 사조직 여부에 대해서도 “모든 활동 내용을 검토한 결과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사조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들은 선관위가 미리 결정을 내려놓고 법을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또 참평포럼이 참여정부의 업적평가라는 대외적인 목표와 달리 실제 활동 상황을 보면 선거법상 사조직으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강경근 교수는 “참평포럼은 사조직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선관위가 참평포럼을 ‘사조직이 아니다’고 한 것은 공직선거법에 적혀 있는 문구를 엄격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문구 자체만 놓고 해석하게 되면 의도적인 해석이 되기 쉽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소속 위원들의 의견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거다. 사조직의 범위를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참평포럼의 사조직 여부보다는 선거운동 관련성 유무를 가리는 게 올바른 접근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정한 것은 자유선거보다 공정선거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참평포럼이 공명선거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지를 살펴봤어야 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참평포럼이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사조직이 아니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특정인을 위해 봉사하면 사조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앞으로 활동을 더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장영수 교수도 “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조직은 특정 후보자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선거에 동원되는 조직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재까지는 참평포럼을 사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사조직화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선관위가 참평포럼에 내린 면죄부는 현 시점에서만 유효할 뿐 향후 어떻게 성격이 달라지느냐에 따라 사조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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