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급회담 차기일정도 못잡아… 무용론 확산
▽의제도 아닌 쌀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간 회담=남측 대표단은 이번 회담의 기조연설에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통해 한반도에서 한 단계 높은 평화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지만 실제 회담에선 이 문제를 전혀 논의하지 못했다.
또 시급한 현안인 개성공단 통신 통행 통관 문제의 개선 방안과 5월 17일 시험운행을 실시했던 경의선 동해선 열차의 단계적 개통에 대한 협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들이 “회담의 의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던 쌀 차관 제공 유보에 북측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회담 기간 내내 “쌀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하지만 여러 상황 탓에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득했지만 북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남북대화의 한계?=북측은 핵문제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등의 안보 문제는 미국과 논의할 문제이지 남북 간 의제가 아니라는 기본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남북대화에서 다룰 수 있는 의제의 한계 역시 명확히 드러났다.
2000년 7월 이후 21차례 열린 장관급회담은 남측의 쌀 비료 지원의 대가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이나 면회소 건설 등에 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부산에서 열린 19차 장관급회담이 남측의 쌀 비료 지원 거부로 결렬된 것은 북측이 쌀 비료의 조달 외엔 다른 것을 논의할 태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줬다.
정부는 당시 장관급회담을 통해 북측에 미사일 발사 등 한반도 안정을 위협하는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북측은 지난해 10월 남측의 설득을 무시하고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북측이 원하는 것을 군말 없이 제공했을 뿐 핵문제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누란지위에 빠질 때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남북 장관급회담의 현주소”라고 평가했다.
▽대안은?=남북 장관급회담이 유용한 회담이 되기 위해서는 장관급회담이 지향하는 목표에 관해 남북 간에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장관급회담으로 자리를 잡은 경제협력추진위원회, 군사실무회담 등 실무급 회담을 활용해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의제를 우선적으로 다루는 현실적인 협상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장관급회담을 남측의 쌀 비료 지원 창구와 등식화하고 있는 북측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회담 의제를 섣불리 확대하기보다는 실무선에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해 장관급회담을 정례화하는 데 치중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