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200]출발! 매니페스토

  • 입력 2007년 6월 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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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군 부재자 투표를 나흘 앞둔 12월 8일.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현역병의 군 복무기간을 4개월 감축하는 내용의 병무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그해 9월 군 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노 후보가 뒤늦게 발표하면서 2개월을 더 보탠 것이다. 즉각 ‘공약 베끼기’ 논란과 함께 타당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미 선거가 코앞에 닥친 상황이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약 검증은 이뤄지질 못했다.

#2002년 6월 노 후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토론에서 연 5%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6% 경제성장을 약속한다. 노 후보는 이에 질세라 다시 1%를 더해 임기 동안 7%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발표했다. 노 후보의 ‘7% 성장론’은 이렇게 나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두 후보는 이런 식의 ‘공약 경쟁’을 벌였고 대선 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표만 의식하고 충분한 검토 없이 불쑥불쑥 장밋빛 ‘깜짝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매니페스토(Manifesto·참공약 선택하기)’ 운동이 벌어지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소속의 두 유력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공약 개발 전쟁’이 치열하다. 두 후보는 이미 임기 중 ‘7%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대표 공약’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막후 신경전이 전쟁에서의 ‘첩보전’ 못지않다.

양측이 현재까지 내놓은 대표 공약은 ‘대칭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맞서 박 전 대표는 열차페리 구상을 내놓았다. 이 전 시장은 ‘대한민국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발표했고 박 전 대표는 ‘줄푸세’(감세와 정부 규모를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주의를 세우다)로 응수했다.

그러나 양 후보는 ‘큰 그림’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나 재원 조달 방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당장 ‘7% 성장론’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인 구상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외의 다른 주자들도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공약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민심대장정으로 관심을 모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 측은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면제 등 ‘국민이 진짜 원하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행 대입제도 폐지 등 교육시스템 개혁(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고위공직자 1가구 1주택 의무화(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 성인 1인 1주택제(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등의 정책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범여권 및 민주노동당의 대선주자들은 한나라당에 맞서 ‘정책 전선(戰線)’을 좀 더 선명하게 할 수 있는 공약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들 주자가 내놓은 공약 역시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측면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만한 것이 많다.

올해 대선이 정책 대결 양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흐름이다.

이는 민주화 20년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다양화, 선진화됐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대선을 앞두고 증세와 감세 논란, 부동산 가격 안정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 여부, 공교육 활성화 방안, 국민연금 개혁 문제 등 민생과 직결된 갈등 현안이 분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2년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정책 대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구체적인 예산 등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밋빛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력 주자건, 마이너 주자건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미리미리 검증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본보의 ‘2007 대선 매니페스토 평가단’에 참여한 경희대 임성호 교수는 “자칫 국민의 기대심리만 올려놓고 충족을 못 시켜 불신만 쌓일 수 있다”며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등을 엄밀하게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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