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직 인력풀 만든다더니 임용 88명중 75명 친정복귀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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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위공무원단’ 교육받은 392명 분석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고위공무원단’ 출범 직후 대상 공무원에게 e메일을 보냈다.

노 대통령은 이 e메일에서 ‘현 부처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정부 어느 곳에서든 일할 수 있게 됐다. 교류가 활성화되고 부처 간 협의가 원활해질 때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정부 경쟁력도 한층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아직 시행 초기이기는 하지만 고위공무원단 대부분의 공무원이 타 부처 지원보다는 기존 부처 안주를 택했다.

▽넘지 못한 현실의 벽=지난해 제도 시행 이후 고위공무원단에 신규 임용된 88명(28개 기관) 중 출신 기관이 아닌 타 부처에 임용된 사람은 13명에 불과했다.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비서실 김모 행정관은 교육 이수 후 교육문화 선임행정관으로 임용됐으며, 공직기강비서관실 박모 행정관도 공직기강 선임행정관으로 수직 이동했다.

후보자 교육 이수자 9명 중 8명이 임용된 대통령비서실은 1명(대통령비서실에서 교육을 받은 후 건설교통부에서 임용)을 제외한 7명이 해당 부서 행정관에서 선임행정관으로 발탁됐다.

국세청도 마찬가지다. 국세청 출신 임용자 10명도 모두 다시 국세청에 자리를 잡았다.

임용자 수도 기관별로 큰 차를 보였다.

대통령비서실은 9명 이수에 8명이 보직을 받아 88.8%의 높은 임용률을 보였다.

대검찰청은 12명 교육이수에 8명(66.6%)이 임용됐으며, 국세청도 18명 중 10명(55.5%)이 임용됐다.

이 밖에 법무부가 13명 중 6명, 산업자원부는 16명 중 6명이 고위공무원단으로 임용됐다.

국정홍보처의 경우 교육이수자는 2명뿐이지만 2명 모두 보직을 받아 100%의 임용률을 보였다.

반면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상청, 과학기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22개 기관은 교육 이수자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고위공무원단에 해당하는 보직을 받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권력기관 출신 교육이수자가 높은 임용률을 보인 것.

7명이 교육을 이수한 국무조정실은 1명이 임용됐으며, 국가보훈처(교육이수 5명), 통일부(교육이수 11명), 노동부(교육이수 10명), 통계청(교육이수 5명)도 1명씩만 임용됐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대통령비서실 임용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지난해 제도 시행 전 청와대가 31개의 선임행정관 자리를 신설하고 이를 고위공무원단 직위(마 등급)로 분류했다”며 “청와대의 임용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특정 기관에 임용자가 없는 이유에 대해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인 데다 후보자 교육을 받았다고 전부 고위공무원단 보직을 받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청와대처럼 힘 있는 기관이 자리를 신설해 고위공무원단으로 임명한다면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이런 상태라면 누가 힘없는 부처에서 근무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안 의원은 또 “청와대는 선임행정관 자리를 후보자 교육자들이 교육을 끝낼 때까지 비워 둔 셈”이라며 “이미 사실상 내정된 자리에 누가 지원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공모해도 안 가려 해”=고위공무원단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이처럼 겉도는 것은 타 부처를 지원해도 그에 따른 이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고위공무원단 소속 공무원이 타 부처를 지원해 임용되면 매달 80만 원의 수당이 별도로 지급될 뿐 인사 등 다른 인센티브는 전혀 없다.

지난해 후보자 교육을 받고 타 부처 지원을 하지 않은 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일단 타 부처에 임용되면 당장 2, 3년은 보장돼도 그 이후를 전혀 알 수 없다”며 “낯선 토양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데 썩 내키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혀 새로운 일을 국장급으로 해야 하는데 실적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완전히 다른 조직의 선후배들이 내 말을 따를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고위공무원도 “승진이 반드시 실적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그동안 쌓아 놓은 부처 내 인맥을 모두 무시하고 다른 부처로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은 한계가 너무 크다”며 “공모를 해도 (타 기관) 지원을 안 해 (지원 및 발탁을 독려하는) 지침까지 내려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랜 계급제와 연공서열 중심의 공직문화, 기존 조직에 안주하려는 성향 등 현실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며 “다른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하지만 특별한 방법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반론보도문]

본보 4월 26일자 A1면 ‘힘 있는 부처 후보들만 임용잔치’, A12면 ‘인력풀…75명 친정 복귀’ 기사에 대해 중앙인사위원회는 부처별 결원 상황 등에 따라 승진 비율이 다른데도 ‘힘 있는 부처’만 임용시켰다는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고, 고위공무원단은 부처 교류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므로 ‘친정 복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밝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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