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초기조치 없는데…” 정부 ‘경추위’ 딜레마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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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장고(長考) 끝에 18∼21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를 예정대로 진행하되 차관(借款) 형태로 제공할 쌀 지원은 북한이 6자회담 ‘2·13 합의’의 초기조치를 이행하는 것을 지켜본 뒤 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예정대로 경추위를 열자는 쪽으로 정부 의견의 무게중심이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종 결론을 17일 오후 밝히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발표를 미루며 국민에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다. 북한이 초기조치 이행을 약속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담겨 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남북 관계의 동력을 이어 가야 한다는 통일부의 주장과 북한의 초기조치가 이행되지 않는 한 쌀 차관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외교통상부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경추위 개최 뒤 쌀 지원 연기?=정부는 이날 오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경추위 개최를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 이후 통일부 당국자는 “정무적인 최종 판단은 17일이지만 상황이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종 결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내리게 되지만 경추위는 예정대로 열릴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로서는 남북이 합의한 일정을 먼저 깨는 부담을 덜 수 있고, 경추위에서 쌀 지원을 약속한다 하더라도 지원 시기를 5월 말이나 6월로 늦춰 잡으면서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을 촉구할 수도 있다.

임기가 10개월 남은 노 대통령도 핵실험 이후 어렵사리 복원한 남북 관계가 다시 경색되는 것을 원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을 염두에 뒀다면 더더욱 그렇다.

통일부 당국자는 “상반기로 예정된 철도 시범운행, 5월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회담, 6·15 및 8·15 공동행사, 10월 적십자회담 등 예정된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예정대로 경추위가 열리는 쪽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경추위 개최의 함정=경추위를 예정대로 강행한다 해도 정부의 의도대로 남북 관계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회담이 아니라 회담을 통해 얻어 낼 쌀이다. 경추위 마지막 날인 21일까지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식량 차관을 제공할 명분을 찾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경추위는 파행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쌀 지원을 협상카드로 사용해 북한이 초기조치 이행에 나서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외교부는 국제사회가 북핵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정한 만큼 북한이 성의를 다한 뒤 지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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