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넘긴 2·13 합의]美 “며칠 기다리며 北 지켜볼 수 밖에”

  • 입력 2007년 4월 1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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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합의 60일째를 맞은 14일 북한이 끝내 초기 이행 약속을 저버리자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다소 양보하더라도 북한과 최대한 협상한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정작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재입국 허용이라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약속도 시한 내에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내외신 공동기자회견에서 “15일이 김일성 생일(태양절)인 만큼 당장 뭔가 나오긴 어렵다”며 “며칠 더 기다리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넘어선 안 될 ‘레드 라인’을 명확히 하는 것을 꺼렸다.

기자들은 회견에서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느냐’는 질문을 거듭했다. 이 당국자는 “인내심이 무한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모종의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예상되는 것은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등 강경파의 반발이다. 이들은 “핵 포기 의사가 없는 북한과 협상을 하느라 시간만 끌다 이젠 ‘나쁜 행동(비밀 핵개발)엔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저버렸다”며 자신들의 친정인 부시 행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 없이 1, 2주가 흐르더라도 미국이 구체적 조치를 내리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3년간 6자회담 협상 과정에서 미국엔 북한의 태도를 바꿀 지렛대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돼 왔다. 또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이후 견고하게 쌓았던 대(對)북한 경제제재가 2·13합의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만큼 마땅히 북한을 압박할 수단도 없는 게 현실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하더라도 약속 이행을 강제할 ‘채찍’은 최소한 남겨 놓아야 했는데도 미국은 이런 수단을 다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는 다른 요소는 협상 및 합의 이행의 칼자루를 미국이 아닌 북한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의 자세는 북한의 속내를 두고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는 낙관론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관론도 배제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백악관이 생각하는 평양의 계산을 이렇게 전했다.

‘일단 미국과 협상해 본다. 포기할 핵 프로그램을 잘게 쪼갠 뒤 각각의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때만 계속 협상한다. 보유 중인 완제품 핵무기와 무기급 플루토늄 포기는 다음 정권 때의 일이며 미국이 얼마나 많은 걸 내놓느냐에 달렸다.’

결국 북한은 이행 과정마다 최대한 ‘애를 먹이면서’ 소걸음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이 북한의 사소한 약속 이행을 두고 ‘큰 양보를 했다’고 평가할 경우 북한이 쥔 주도권은 쉽사리 미국에 넘어오지 않을 것으로 백악관은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15일 “최대한 북한과 협상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결심이 분명한 만큼 당분간 북한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이 어느 순간 부분적인 약속 이행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미국이 인내하는 국면이 아주 장기화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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