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파워 과시하려 민감한 정보 흘리기도”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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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개치는 대북 브로커들의 세계

▽“나를 통하면 북한 실세와 연결된다”=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관계에서의 투명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와 핵실험(10월) 감행에도 불구하고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 대북 ‘공식라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노 대통령은 ‘비선’인 대북 사업가 권오홍 씨를 통해 자신의 측근인 안희정 씨의 베이징(北京) 비밀 접촉을 지시했다.

민간인 신분인 안 씨가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북 비선 접촉을 했던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이 비선 접촉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대북 브로커들의 활동상을 살펴보면 이번 대북 비선 접촉의 진짜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모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대북 업무를 담당했던 B 씨는 북한의 강관주 대외연락부장과 연결되는 ‘핫라인’이 있다며 현 정부의 실세들을 상대로 막후 대북 접촉을 중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2004년 말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이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베이징 비밀 접촉’을 제안했고 이에 앞서 2003년에는 나종일 당시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에게 대북라인 개설을 제안했다.

그는 김용순 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사망(2003년)과 폐암에 시달리던 임동옥 전 통일전선부장의 쇠락으로 기존의 통일전선부 라인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며 ‘강관주 실세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의장 등은 신중한 검토 끝에 결국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범여권의 현역의원 C 씨 역시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 정치권에서는 C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 방문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북측 인사를 면담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단독 인터뷰를 추진하던 한 언론사 사장도 ‘브로커’와 접촉한 적이 있다. 2005년 이 언론사 사주의 측근 그룹은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 추진을 위해 베이징의 한 브로커에게 인터뷰 알선을 의뢰했다. 대가 지급까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유력 대선주자에게 접근하는 일도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청계천 복원을 추진할 당시 ‘팔도 돌 전시장’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한 대북 브로커는 사업을 성사시켜 주겠다며 300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은 요구액이 지나치게 많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대선 당시 ‘흑금성’의 ‘북풍’ 공작이나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 등 북한 변수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연초부터 ‘한나라당 집권 불가’를 외치고 있어 대북 브로커가 이번 대선에도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에 이용될 소지=대북 브로커는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외화벌이 사업들을 추진하면서부터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자신들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남측 사업가들과의 접촉을 확대했고 이 과정에서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했던 남측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대북 브로커로 변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단둥(丹東)과 베이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대북 브로커 B 씨는 “현재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브로커는 100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을 상대하는 북측 인사들 대부분이 대남 공작기구에 소속돼 있다는 점이다. 북측 인사들은 민족경제협력연합회나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등 남북경협 관련 민간기구의 ‘모자’를 쓰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노동당 산하의 통일전선부 등에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남측은 북한 주민 접촉을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등 규제를 완화해 대북 브로커들의 활동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북측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대북 브로커들이 북측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민감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고위 인사들을 연결해 주는 등 사실상 첩보활동, 공작활동에 이용될 위험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브로커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고 남북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대북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자신들은 오히려 ‘분단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비정부기구(NGO)의 대북 지원이라는 공식 활동을 하면서 브로커 역할을 하는 신종 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국고에서 지원하는 남북협력기금을 쉽게 타낼 수 있는 인도적 사업을 통해 북측 인사들과 합법적으로 교분을 쌓을 수 있는 동시에 ‘돈이 되는’ 일을 비밀스럽게 추진할 수 있어 이들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대북 브로커 되는 길=대북 브로커가 되는 ‘왕도’는 없다. 대북 브로커를 양성하는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식 이수과목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대북 브로커가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북 브로커는 합법적으로 대북 사업을 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북측과 접촉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확보한 뒤 독자적인 브로커로 ‘개업’하는 경우가 많다.

안희정 씨의 베이징 비밀 접촉을 성사시킨 대북 사업가 권오홍 씨도 1989년부터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해 왔던 ‘사업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창구를 개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과의 접촉 초기 대북 브로커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북측의 시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북측은 브로커로서의 유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자금 동원 능력이나 남측 고위 인사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합법적인 대북 사업을 벌이다 대북 브로커로 변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규모가 큰 사업의 경우 철저하게 당국의 계획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브로커 활동 과정에서 사업권을 따내거나 지분을 얻는 등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북 브로커는 “북한과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브로커 활동을 통해 큰 것 한 건을 성사시키면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독점적 사업권 등을 따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대북 브로커의 문제점과 개선책=역대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도의 통치행위로 간주하며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추진해 온 것도 대북 브로커가 활발한 활동을 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힌다.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최측근을 특사로 임명하고 비밀리에 방북을 추진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노태우 대통령 때의 박철언 씨,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씨 등이 대표적인 밀사. 이들 밀사의 대북 접촉에는 대개 대북 브로커들이 개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비밀 송금하는 등 밀사를 통한 대북 접촉은 비용도 많이 든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이 남북관계에서 무리한 성과를 추진하려는 발상 자체를 버려야 대북 브로커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높이게 되면 대북 브로커들이 음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브로커를 통한 대북 접촉은 북한에 이용당할 위험이 높다”며 “이들이 활동범위를 넓히게 된 것은 정부의 은밀한 대북 접촉 관행이 한 원인인 만큼 투명한 남북관계를 통해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축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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