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들 ‘청와대 따라하기’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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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산자-재경부국장 “샌드위치론 공감”→“위기론 도움 안돼”

청와대가 최근 ‘임기 말 하산(下山)은 없다’며 공직 군기 잡기에 나서면서 장관들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청와대의

‘뜻’을 받드느라 여념이 없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토로가 나오고 있다.

▽“코드를 맞춰라”=청와대는 13일 브리핑을 통해 “(국내 언론들이) 최근 한 대기업 회장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발언을 침소봉대해 위기론의 중요한 논거로 삼아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9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안 차리면 5, 6년 뒤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한 뒤 언론에서 한국 경제 위기론이 제기된 데 대한 반박이었다.

뒤늦게 청와대의 기류를 감지한 해당 부처가 부산히 움직였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21일 국정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경제 우려가 지나쳐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비판하는 데 급급한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20일 한 특강에서 “중국과 일본에 치여 우리 무역구조가 샌드위치 신세로 추락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13일 “이 회장의 지적에 상당히 공감한다”고 했던 조원동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22일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경제 위기에 대한 걱정이 도를 넘어 위기감으로 증폭되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발 물러섰다.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에서 빠지려는 KBS를 정면 비판하자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21일 급히 기자들을 만나 KBS를 성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KBS의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 제외 가능성을 시사한 뒤 청와대의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하던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 15일 “강남 아파트를 팔고 분당의 비슷한 규모 아파트로 이사 가라”고 한 것도 논란을 빚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인터넷 매체와의 회견에서 “이사 가겠다면 집값이 싼 동네로 가면 된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레임덕 차단용?=노 대통령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퇴임 후 매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임기 말 국정 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해당 부처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무회의를 통해 주요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 같은 청와대의 공직 군기 잡기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 내에선 장관들이 정책 소신을 펴지 못하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권 부총리의 ‘강남 이사’ 발언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임기 중 집값을 잡으려는 청와대를 대신해 총대를 멘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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