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BDA 전액해제 발표… 북한 '인도적'사용 약속

  • 입력 2007년 3월 19일 1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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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관한한 오로지 핵문제 해결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인권, 위조지폐 등 여타 이슈들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 버렸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전액 반환 결정은 부시 행정부 내 기류에 정통한 한반도 전문가들조차 "설마"라고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이 "마카오당국에 다 위임하겠다"는 방침을 흘리자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동안 강조해온 원칙과 명분이 있는데 그렇게까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번 결정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치밀한 장기 계획과 포석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1월 베를린회동에서 북한 측에 암묵적으로 "해결 약속"을 해준 국무부는 그동안 재무부 측에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재무부는 14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상당히 강한 톤으로 북한 계좌의 불법성을 강조했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조차 15일까지만 해도 미국이 전액 해제를 희망하는 마카오 당국 설득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전액 해제하기 전에는 핵시설 가동중단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러자 힐 차관보는 재무부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고 결국 막바지에 백악관이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중재안을 만든 힐 차관보는 18일 밤 "곧 워싱턴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했지만 곧 이를 바꿔 19일 아침 베이징에서 자신이 먼저 발표해버렸다. 14시간의 시차 때문에 미국시간으로 월요일 아침에 발표하면 6자 회담 시작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무부도 이에 맞춰 휴일에 발표문을 배포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미 행정부 관리는 이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6자 회담이 훨씬 중요하다. 적은 액수의 돈이 회담의 진전을 가로막게 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무부 고위관리들은 못마땅해 했지만 원칙을 포기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BDA 조사는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의 작품이었다. 재무부의 조사는 위폐 등 불법자금의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지만 중간보고를 받은 체니 부통령이 강력히 힘을 실어줬다. 체니 부통령은 군사력 동원 없이도 북한을 압박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왔다.

북한이 BDA 조사를 이유로 6자 회담의 판을 깨 2005년 9·19합의가 좌초되자 국무부 협상파가 재무부에 불만을 표시했지만 재무부 고위관리는 "부시 대통령이 우리의 작업을 좋아한다"며 일축했다.

결국 시작부터 정치적 요소가 많았던 BDA 이슈는 마무리도 원칙 보다는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강경파들이 북한의 불법행동을 묵과해준 듯한 이번 타협에 역공을 취하고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워낙 부시 대통령이 협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당분간 이 같은 기조에 변화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앞으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나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 이슈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예상외의 태도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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