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으로 그친 회담… 靑 “서로 합의할 위치 아니다”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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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민생 문제를 비롯한 국정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열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민생 문제를 비롯한 국정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열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9일 오전 청와대 회담 후 5개항의 ‘대변인 공동발표문’을 냈다.

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회담 후 공동 발표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 발표문을 발표한 때문인지 양측은 이번 회담에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5개항의 공동 발표문에서 대학등록금 경감 등 민생 과제에 협력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회담에선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공동 발표문

어디에도 ‘합의’란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홍보수석비서관도“합의문이 아니라 발표문임을 유념해 달라. 서로 합의할 만한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만남 자체가 의미”=이 때문에 이날 회담을 통해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을 마련하자던 당초 취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의미 있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회담이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던 배경엔 최근 분당 사태로 인해 원내 2당으로 추락한 열린우리당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노 대통령의 뜻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어려운 여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열린우리당은 현재 특별한 상황”이라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회담 내용을 놓고 양측이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사학법 시행 유보를 검토하겠다’고 한 발언은 사학법 문제의 물꼬를 트는 계기”라며 회담 성과로 꼽았지만 청와대는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윤승용 수석은 “(사학법 시행 유보 문제는) 사전 논의가 없던 것이어서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였다”며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열린우리당도 즉각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공동 발표문에서 사학법과 사법개혁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밝힌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두 법안의 ‘빅딜’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빅딜’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집단탈당파 의원들이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융통성을 보이고 있고, 사학법 문제로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한 여야의 결단을 촉구하는 여론도 비등하기 때문에 정책 빅딜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관측이 많다.

▽국정운영 방식을 둘러싼 설전=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어디까지가 민생인지 한번 토론해 보자”고 운을 떼자 강 대표는 “개헌 빼고 다 민생”이라고 받아쳤다. 노 대통령은 이에 “민생 아닌 것이 없다”고 받아쳤다.

노 대통령과 강 대표는 회담에서도 국정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당초 의제에서 제외했던 개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강 대표의 주장을 반박했다. 다음은 주요 쟁점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

△강 대표: 대선 관리를 중립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달라.

△노 대통령: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없다.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뢰 못 받는다. 선거를 공정관리할 테니까 제발 공정관리해 달라고 그만 해라. 지금까지 공정관리 안 한 것 없다. 이는 마치 전과도 없는 사람에게 자꾸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정치 공세다.

△강 대표: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비판을 삼가 달라.

△노 대통령: 제발 나를 선거에 끌어들이지 말라. 국정 파탄, 잃어버린 10년 등 선거전략으로 공격하지 말아 달라. 먼저 부당하게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 공격 안 하겠다.

△강 대표: 국정의 중심에 서서 민생 경제, 안보 등에 힘써 달라.

△노 대통령: 국정을 열심히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국정의 중심에 서 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기본도 안 된 사람이라는 불신을 깔고 있는 것으로 예의가 아니다.

△강 대표: 개헌 정계개편 등 정치 행위에서는 손을 떼고 민생 문제에 전념해 줄 것을 부탁한다. 민생 문제라고 해도 10, 20년 후 공약을 내놓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노 대통령: 개헌도 정치 행위가 아닌 개혁의 일환이다. 정계개편 문제는 개입 안 한다. 다만 열린우리당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임기 1년 남았다고 정책을 접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되나. 5년짜리 정책만 하면 나라가 망한다.

△강 대표: 개헌은 18대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어 한꺼번에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 대통령: 한나라당이 개헌 제안을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왜 한나라당의 판이 흔들리느냐. 그렇지 않다. 개헌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발의할 테니 찬성이든 반대든 해 달라. 국민에게서 도덕적 심판을 받고 싶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회담 도중 열린우리당 집단탈당파를 겨냥해 “탈당한 사람들은 정치인 보따리장수다. 보따리장수는 정치의 기본적 윤리가 없다”며 “(그런 사람들은) 정치를 떠나라고 말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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