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집값 폭등 미안하다’며 웃는 대통령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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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 죄송합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좀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신년연설에서 한 말이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던 지난달 ‘부산 발언’ 이후 집값 폭등에 대한 두 번째 사과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내 정책 실패의 책임을 언론에 돌렸다. 자신의 책임은 “유동성 관리를 잘못했다”는 것 하나였다. 나머지는 ‘부동산 신문’에 있다고 했다. 40여 건에 이르는 정부 대책이 번번이 언론 때문에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비난한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주택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틀어막고 수요를 억누르는 대책을 누가 내놓았나. 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든 각종 개발계획은 누가 만들어 냈나.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담보대출을 묵인한 것은 누구인가. 바로 현 정부 아닌가.

정부는 2005년 ‘8·31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 ‘완결판’이라고 자부했다. 당시 대책을 만든 실무자들은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집값은 1년도 안 돼 폭등했다. 정부를 믿고 내 집 마련을 미룬 국민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남의 탓만 하는 노 대통령은 언론을 과대평가하고 있거나 시장원리를 과소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인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부산에서는 분양가의 반값에 아파트가 팔리지만 90%가 안 되는 서울에선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의 집값은 33.7% 뛰었다. ‘꿀리는’ 정도로 치부될 사안이 아니다. 염치(廉恥)가 있다면 ‘좀 올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최근 경기 의왕시 변두리에 4500만 원짜리 전셋집을 구한 지인(知人)은 “이젠 끝난 것 같아. 내 집 마련? 노력해 봤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더군”이라며 말을 흐렸다. 며칠을 고민하고 자책했는지 그의 입술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기자는 대통령이 왜 웃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평생 벌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서민들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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