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탈당 둑’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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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탈당의 변’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서 ‘탈당의 변’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민들레 홀씨처럼…22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근태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당 지도부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의장은 “탈당이나 (중앙위원회 개최) 실력 저지, 당무 거부 등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동주 기자
민들레 홀씨처럼…
22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김근태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당 지도부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의장은 “탈당이나 (중앙위원회 개최) 실력 저지, 당무 거부 등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동주 기자
열린우리당이라는 둑의 붕괴는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통합신당파도 아니고 탈당을 시사하지도 않았던 임종인 의원은 22일 ‘당의 보수화’를 비판하며 독자 탈당을 선언했다. 임 의원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노선이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임 의원의 탈당은 신당파의 탈당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맥락. 그러나 탈당에 부담을 느껴 온 신당파 의원들의 심리적 저지선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9일 중앙위원회에서는 통합신당파와 당 사수파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당헌 개정안(기간당원제 폐지 및 대의원 선출 요건 완화) 통과를 위한 절충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당내에서 여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헌 개정이 무산되면 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당은 자연스럽게 와해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탈당 명분도 생긴다. 당 주변에선 “분당(分黨)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각종 시나리오도 나온다.

▽선도 탈당의 두 가지 흐름=29일 당 중앙위의 결정이나 2·14전당대회 일정과 무관하게 일부가 먼저 ‘선도 탈당’을 감행할 여지가 있다.

우선 천정배 의원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개혁 성향의 천 의원이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과 함께 ‘제3지대’로 나가 민주당 일부 및 정치권 밖의 개혁세력과 연대해 통합신당의 ‘모태’를 만든 뒤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러나 천 의원의 깃발 아래 과연 몇 명의 의원이 모일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10명, 많게는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할 수 있는 정도의 의원을 규합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최용규 조배숙 정장선 의원 등 일부 재선 의원이 먼저 치고 나가는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이들이 민주당 및 한나라당 내 개혁 성향 의원들과 함께 이념적으로 ‘중도 선진화’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을 만든다는 것.

범여권 차원을 넘어 서는 ‘큰 그림’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문제다. 재선 의원들끼리도 생각이 통일돼 있지 않다. 재선 의원들은 23일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당파의 기류=우선 신당파 의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시나리오가 있다. 29일 중앙위 결과에 따라 당 사수파와의 결별 명분을 내세워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김한길 원내대표, 초·재선 의원, 호남 의원 등이 모두 탈당을 결행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오래전부터 나온 시나리오지만 사정상 결행이 미뤄져 왔다.

김 의장은 당 지도부로서 가능한 한 전당대회까지 책임지고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먼저 깃발을 들 수 없는 처지다. 또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 일부 당내 보수 성향 의원과는 신당의 정체성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분당 과정에서 김 의장계와 정 전 의장 중심의 중도 진영이 갈라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 노선상으로만 보면 김 의장과 천 의원이 같은 배를 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대거 탈당 사태가 오면 소수가 열린우리당에 잔류하고, 나가는 분들 중에서는 개혁적 색채가 강한 분과 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한 달도 안 돼 끝나는 ‘동거’=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은 벌써 따로 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은 지난해 12월 27일 “통합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전당대회에서 평화 개혁 미래 세력의 대통합을 결의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이 21일 자신의 팬클럽 출범식에서 “(통합신당 추진이) 좌초하면 결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사실상 탈당을 시사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갔다.

김 의장은 이날 성명 발표와 22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29일 중앙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탈당을 공언하거나 실력 저지를 거론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장 측은 당을 떠나기로 결심한 정 전 의장 측이 당 의장 직에 매여 개인적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없는 김 의장을 ‘배신’했다는 반응이다. 한 측근은 이날 “20일 비대위에서 정 전 의장 측 비대위원들이 중앙위 소집을 통한 당헌 개정을 강력히 요구해 받아들여졌다”며 “실현이 매우 어려운 방안으로 밀어붙여 탈당의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의장 측은 ‘결단’을 언급한 것이 탈당을 시사한 것이 아니라 중앙위의 당헌 개정을 부결시키려는 당 사수파에 대한 압박이며, 선도 탈당파에 대한 자제 압력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며 라이벌 관계였던 두 사람이 열린우리당을 떠나서도 한 배를 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많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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