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UCC 태풍 온다…‘참~ 나쁜 동영상’ 한 방에 쓰러진다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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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클릭하면 그곳에는 ‘통제’가 전혀 없습니다.” 미국 CNN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인사이트’ 진행자 조너선 만 씨. 그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중간선거의 네거티브 선거전을 이끈 동영상 손수제작물(UCC)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유튜브를 일종의 ‘정치적 해방구’로 지칭한 것이다. 중요한 청문회에서 깜박 잠든 콘래드 번스 전 상원의원과 ‘마카카(macaca·사람을 원숭이에 빗댄 속어)’란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던 조지 앨런 전 상원의원이 유튜브에 당했다. 두 의원의 행동은 모두 문제가 있었다. 이런 점에선 UCC가 정치인 자질 검증과 탈법 불법 예방에 상당한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UCC 감시 활동이 단 한 번의 실수를 노린 의도된 저질 선거운동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

○ 미국 중간선거서 위력

번스 전 의원의 UCC 동영상에 대해 “순간의 실수를 가지고 수십 년 정치 경력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등 돌린 여론을 되돌리진 못했다.

선거가 끝난 후 미국 언론은 그의 낙선을 가져온 UCC의 위력에 대해 ‘바이러스 같은 비디오(viral video)’란 표현까지 썼다. 아무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바이러스의 속성이 UCC의 엄청난 힘을 낳았다는 것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UCC의 괴력은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대선 때부터 그 조짐을 보였다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의 참모들은 케리 후보의 연설을 동영상 생중계로 시청하면서 그의 과거 발언과 어긋나는 대목을 집중적으로 찾았다. 그러고는 현장의 참모나 평소 친분 있는 언론인들에게 ‘케리의 이런 발언은 과거 발언과 배치된다’고 알려줬고 케리 후보는 연설 직후 그에 대한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케리 후보의 당황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케리는 거짓말쟁이’란 선거전도 폈다고 한다.

한국은 어떨까. 한 유력 대선후보의 인터넷선거 담당자는 “그동안 보여 온 한국 유권자의 폭발적 참여도를 감안할 때 한국 UCC의 괴력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가 지난해 5월 모 국회의원의 ‘술자리 동영상’.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이 동영상은 국회의원이 술집 여종업원의 어깨에 팔을 얹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 유포됐다. 해당 의원은 “이미지 훼손을 노린 몰래카메라”라며 법적 대응까지 했지만 그 동영상은 순식간에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 웹2.0 시대의 UCC 쓰나미

동영상 UCC 사이트 ‘판도라TV’의 관계자는 “UCC 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유저(이용자)들의 세상”이라며 “불법적인 동영상은 삭제하겠지만 이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논의를 해서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 명확할 경우에만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인터넷 업계는 UCC 동영상에 대한 과도한 모니터링은 ‘참여, 공유, 개방’을 모토로 하는 웹2.0의 시대정신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불법적인 선거 UCC에 대한 여과 장치를 두는 데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모니터 요원이 각각 10∼40명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의 동영상 UCC 사이트는 포털사이트의 동영상 서비스를 비롯해 모두 10여 개. 이들 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수만 개의 동영상 UCC가 올라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은 인터넷 나름의 자정(自淨)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터무니없는 UCC는 누리꾼들에 의해 그 잘못이 지적되고 결국 퇴출된다는 것. 일부 포털사이트가 운영하는 ‘댓글 신고제도’가 대표적이다. 즉, 허위 사실이 담긴 UCC에 대한 신고를 ‘댓글’로 받으면 그 진위가 밝혀질 때까지 그 UCC를 사이트에서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온라인 특유의 내부 통제와 견제’도 역시 한계가 있다. 최근 남자 중학생들의 집단폭행 장면 UCC가 화제가 됐는데 그것이 ‘자작극’임을 밝혀낸 것은 대표적 ‘오프라인 기관’인 경찰이었다.

그러나 UCC 사이트들은 대선 특수(特需)를 ‘통제’로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동영상 UCC의 앞뒤에는 상업광고까지 붙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숭실대 김사승(언론홍보학) 교수는 “인터넷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대선의 해를 맞아 동영상 UCC의 성장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동영상에 대한 견제와 여과 기능은 우선 해당업체의 몫이어야 하며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UCC, ‘그들만의 리그’인가

미국에서는 “유튜브에 UCC를 올리는 사람 대부분은 진보 성향의 젊은 유권자이다. 그들이 미국정치를 희화화하는 측면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정치적 소외자들이 진정한 정치의 장(場)을 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UCC가 유권자의 새 영역을 개척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특정 연령의,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왜곡될 가능성도 농후한 것이 사실이다.

웹 분석전문기관 ‘랭키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세대별 UCC 이용량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20대 38.9%, 30대 30.7%로 20, 30대가 거의 70%를 점하고 있다. 40대는 10.8%, 50대 이상은 2.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UCC가 젊은 표심에는 강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합리적 선택’을 이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극적인 동영상 UCC의 한 장면은 후보의 정책 자질 경륜 같은 다른 중요 요소를 한꺼번에 쓸어버려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측면도 짙다.

○ UCC 악용한 저질 선거운동에는 대책 세워야

한국에서도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는 봄이 되면 선호 후보를 지지하거나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UCC 동영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현행 선거법상 불법인 이런 UCC를 여과해 사전에 차단하는 데 인력이 부족하기는 인터넷 업계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7월부터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도입될 예정인 ‘제한적 인터넷 실명제’가 UCC 쓰나미를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한 주요 정치 사이트 운영자는 “인터넷 실명제는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다. 나부터도 누리꾼들에게 ‘익명의 자유’를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그냥 벌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임성규 중앙선관위 사이버조사팀장은 “유권자의 합법적인 UCC는 선거운동 기간 선호 후보의 홈페이지에 격려나 지지 내용의 동영상을 올리는 정도”라며 “그 UCC를 다른 사이트로 퍼 날라도 현행 선거법 위반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거운동기간’이란 제한적 기간에, ‘지지 후보의 홈페이지’라는 제한된 장소에만 합법적으로 자신의 UCC를 올릴 누리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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