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與 실세들 ‘무대응이 상책’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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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3일에 이어 26일 국무회의에서 또 다시 고건 전 국무총리 등을 거론하며 현 정부 출신 인사들의 ‘대통령 비판’을 강하게 비난했으나 당사자들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서울 종로구 연지동 개인 사무실로 출근한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일절 얘기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등 최근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논의와 관련해 노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여당의 실력자들도 대응을 자제했다.

섣부른 대응이 ‘이전투구’로 비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데다 자칫하면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고건, ‘일단 피해가자’=고 전 총리의 참모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인의동 희망연대 사무실에 모여 2시간 가까이 대책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는 “노 대통령의 오기 정치가 또 발동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과의 ‘차별화’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를 표현했다”는 등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발언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에는 “우리를 끌어안고 ‘자폭’하겠다는데 말려들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신중론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고 전 총리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전화로 보고받은 직후 “우리는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고 전 총리 측의 김덕봉 전 총리공보수석비서관은 “고 전 총리는 퇴임 후 1년 6개월 동안 언론 인터뷰도 자제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 대통령과 참여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일부에서 고 전 총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짜 목표는 ‘김·정·천’?=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미 정치적으로 결별한 고 전 총리보다는 아직 여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열린우리당 김 의장, 정 전 의장, 천 의원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 의장은 노 대통령이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을 ‘지역당’이라고 비판하자 “통합신당 노력을 지역당으로의 회귀로 규정하는 것은 모욕감을 주는 것”이라며 정면 반박한 일이 있다.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가장 먼저 통합신당 추진을 선언한 천 의원은 최근 부동산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부 주요 정책을 연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만 다녔다”며 현 정부의 시스템을 겨냥하기도 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전 의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정치에 ‘올인(다걸기)’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26일 언급을 자제했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정면충돌했다가 ‘시범 케이스’로 당할 위험성이 있는 만큼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게 이들의 정치적 계산인 듯하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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