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블릭스 “北 핵클럽국가로 인정 못한다”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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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8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2003년 제네바 합의 파기 후 급속도로 핵무기 제조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면서 “현재 북한은 핵무기 10개를 만들 정도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은 오랫동안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됐던 국가”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대북 제재가 기대한 만큼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웨덴 정부 산하 ‘대량살상무기위원회(WMDC)’를 이끌고 있는 블릭스 전 총장은 지난주 보고서 발표를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하던 중 본보 e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본보는 인촌기념강좌를 위해 8일 저녁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블릭스 전 총장과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유엔 무기사찰단장을 지낸 바 있는 그는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다. 블릭스 전 총장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북한이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압력을 넣는 것은 역효과를 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혁 개방 일정은 북한에 맡겨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했는데 이 결정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회담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지난달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올 7월 미사일을 발사하고 곧이어 핵실험까지 한 것은 도박에서 판돈을 높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한 것은 판돈을 크게 걸어서 크게 얻기 위한 것이다. 판돈이 큰 만큼 쉽게 물러날 가능성도 적다.”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선언했지만 역시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이 양자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이 6자회담과 북-미 대화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각기 다르다. 6자회담으로 얻으려는 것이 경제적 지원, 외교관계, 체제 유지 약속 같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라면, 북-미 대화로 얻으려는 것은 ‘미국과 동등한 위치 확보’라는 심리적 과시적 측면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북-미 간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은 동등한 대화 파트너로 북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며, 이런 태도가 쉽게 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최근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는데….

“1차 북핵 위기 당시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 관계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특사 파견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다행히 이번에는 특사 파견 전에 중국의 중재로 6자회담 재개가 결정됐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특사 파견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북-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중국은 궁지에 몰린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 가며 다시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 북핵 사태에서 중국이 보인 태도는 대체적으로 현명했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중국은 북한 붕괴가 몰고 올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은 이제 ‘조정자(mediator)’가 아니라 ‘이해관계자(interested party)’다.”

―최근 북한과 이란 핵사태가 동시에 문제가 되고 있는데 북한 핵개발에 이란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는가.

“그 같은 추측이 많지만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란 핵개발에 북한이 관여했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최근 북한은 플루토늄 핵에 치중하는 반면 이란은 우라늄 핵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술 이전이 맞아떨어지기 힘들다.”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좋든 싫든 북한을 ‘핵클럽(nuclear club)’ 회원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바람직한 방법은 과거 국제사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했던 것처럼 북한에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를 요청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PSI가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질의 불법 거래를 방지하고 세계 각국이 이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만한 잠재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검증된 것은 별로 없으며 PSI의 법적 근거 또한 희박하다. 특히 북한 선박 검색이 몰고 올 물리적 대치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오랫동안 IAEA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나라의 핵문제에 깊숙이 간여해 왔는데 평소 생각해 온 북핵 해법이 있는가.

“국제사회가 북한의 경제 사회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좋지만 개혁 개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북한에 줘야 한다고 본다. 김정일 정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체제 유지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면서 내정 불간섭 약속을 내걸어야 한다. 또 북한이 베트남식의 경제 모델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한스 블릭스

한스 블릭스 전 IAEA 사무총장은 1981년부터 1997년까지 사무총장을 4차례나 연임한 군축 전문가. 국제법 교수 출신으로 오랜 기간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스웨덴 외교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무기사찰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외교 수완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3년 이라크전쟁 직전 유엔 무기사찰단장으로서 이라크 사찰 결과를 내놓았으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주장하는 미국의 견해와 달라 미국 매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북한과도 인연이 깊다. 제1차 북핵 위기 초반인 1992년 사찰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고 이후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합의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2년 전 미국에서 상영된 인형극 영화 ‘팀 아메리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무기 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하다 상어밥 신세가 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가 지금 의장을 맡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위원회는 2003년 말 스웨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독립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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